Saturday, May 19, 2018

삼백 번째 이야기

전화 통화와 만남은 꺼리지만, 일단 걸려 온 전화나 사람들을 만나면 나의 수다는 쉬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이어진다.

나는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무척 즐겼다. 그러나 친구들이 결혼할 때 난 노처녀였고 아이 낳아 키울 때 난 아이가 없었다. 친구들이 직장 다닐 때 난 스튜디오에 처박혀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수다 떨고 싶어 연락하면 친구들은 바빴다. 물론 그들이 한가할 때 나도 동분서주했지만. 우리들의 바쁜 시기도 지나고 한가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손주에 빠져 산다. 난 손주가 없어서 한가한데. 친구들과의 엇박자 인생인 나의 수다는 자연스럽게 신문 지면에서 떠들어댈 수밖에 없었다.

요즘 너 뭐 하고 사는지 다 알아. 어쩜 네 사생활을 그리도 까발릴 수 있니?” 
친구들은 지면으로 나의 근황을 읽고 의아해한다. 혹시나 자기들과 떤 수다를 쓸까 봐서인지? 만나는 것도 꺼리는 느낌이다. 이 여자 왜? 자기 사생활을 줄줄이 굴비 역 듯이 쓰는 거야? 하는 독자들도 있을 거다.

글 쓰는 것이 전공 아닌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내가 뭔가를 쓰고 싶어 긁적거리다 보니 나의 일상의 수다를 떨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은 정보가 있어 구글에 치면 주르르 뜨는 편리한 세상에 찾아도 뜨지 않는 것은 내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감칠맛 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하도 쓰다 보니 감칠맛이 떫은맛으로 변질되는 듯하다. 어설픈 솜씨로 홈메이드 와인을 빚다 보면 식초로 변질하듯 말이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은 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쓰란다. 내가 글을 쓰는 한 바빠서 저희를 들볶지 않을 것이고 엄마 정신 건강(침해)에 좋다나.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자아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라
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우선 글을 쓰므로 자아를 조금이나마 성장시키자. 식으로 오늘도 삼백 번째 수다로 지면을 메운다. 2008 612일부터 중앙일보에 첫 글을 시작했으니.

나뭇잎처럼 떨어져 묻혀 사라지는 나의 기억들을 누가 10년씩이나 들어줄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돈 받고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동안 내 이야기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나는 빚쟁이인 셈이다. 사례해야 할 것 같다.

차나 와인 한잔 함께 해요. 그럴싸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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