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바탕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산책하러 나갔다. 무더위가 계속되다 지난 밤
번개를 동반한 비를 맞고 난 풀잎들이 생기를 띠며 부쩍 자란 듯 길가로 뻗어 나와 옷깃을 스친다. 풀색 옷을
입은 나도 그들과 한 통속인양 축축한 땅을 소리 죽여 밟는다.
‘창문 열었지? 모기에 뜯긴 것 좀 봐."
남편에게 소리치려다가 앗!
창문과 모기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는데.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저 인간은 물지 않고 나만 무는 모기가 창문만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온다. 그런
날 밤은 모기에게 뜯겨 잠을 설친다.
창문 열지 말라고 아무리 말하고, 타이르고, 빌어봐야 소용없다.
옛날 집이라 망이 없는 탓에 답답하거나 비 온 뒤 날씨가 선선하면 전혀 함께 사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창문을
활짝 열어져키고 시원하다고 좋아하는 남편. 자기만족만을 위해 행동하는 이 인간의 뇌 구조를 바꾸느니 차라리 모기에
뜯기며 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하에 포기한 것이 언제였던가!
‘모기 없는데.’
하고 잡는 척하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다른 방에 가서 코 골며 자는 남편을 미워하다 잠이 들었다.
6.25 때 멀리서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미군 쌕쌕이 소리와 비슷하다는 시어머니 표현처럼 욍~하며 내 넓은 이마를 무는 소리에 불을 켜고 일어났다. 침대 머리맡에 포만감에 취한 모기가
앉아있다. 그냥 냅다 손바닥으로 갈기니 흰 벽에 핏자국이 그어진다. 다시 잠을 자려는데 가려워서 잘 수 없어 일어났다. 끓는 물에 은수저를 담갔다가 물린 곳마다
뜨거운 은수저 찜질을 했다. 가려움은 멈췄지만, 잠이 확 달아났다.
늦잠에 취한 내 머리맡에 커피잔을 놓으며 남편이 합장하듯
두 손을 모은다. 창문 열어 모기에 뜯긴 마누라에 대한 미안함보다 도시락에 대한 애착으로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쩌겠는가. 그나마 잘못 할 적마다 합장하듯 두 손 모으니.
후딱 일어나 부엌으로 향햇다.
남편이 나간 후 다시 잠을 잘까 말까 망설이다 산책하러
나갔다. 바람이 이리 시원할 수가! 나무들도 잡초도 새도 다람쥐도 좋아서 난리다. 평소에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인사도 주고받지
않고 아예 선글라스 끼고 걷거나 땅만 보고 걷던 사람들이 ‘굿모닝.’ 시원한 바람을 쐬고 나니 창문을 확확 열어져 키고 싶은 남편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룻밤 설치고 나면 잠의 루틴이 깨져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툭하면 두 손 모으고 머리 조아리며 잘못했다는 표정 짓는 남편을 내가 봐주지 않으면 누가 봐주랴. 그런데 점점 지쳐간다.
툭하면 두 손 모으고 머리 조아리며 잘못했다는 표정 짓는 남편을 내가 봐주지 않으면 누가 봐주랴. 그런데 점점 지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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