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22, 2016

우리부부는 '박물관 피스'

이형 이거 정말 오랜만이네! 몇 번 전화했었는데 불통입디다. 혹시 집안에 변고가 생겼나 해서…. 두 분 잘 지내시지요?” 
우리야 뭐 변함없는 박물관 피스니까.”
맨해튼으로 거처를 옮기고 30여 년간 같은 번호였던 전화도 없앴다. 우리 부부가 갈라선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한 질문에 뭐 그냥 잘 지내고 있다는 남편의 대답이었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별거 아니면? 이혼?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인다. 예전에도 남편이 서울에서 강의한다고 1년간 떨어져 지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왜 아빠가 집에 오지 않냐?’며 서툰 한글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몇몇 지인들은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이혼했냐?’고도 물었다. 하물며 이웃 히스패닉 남자도 남편이 근 일 년이나 보이지 않으니 뒤뜰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죽 내밀면서 추근대기도 했다.

아무튼, 사람들 마음속에는 한때나마 인연을 맺었던 상대를 미움, 고마움 혹은 그리움 등등으로 기억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남편과 전화 통화한 이 지인은 내 마음속에 고마움으로 기억되는 분으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한때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화가들이 몰리는 슬럼지역을 마치 창공에서 사나운 매가 먹이를 꿰차듯 벼락투자를 해 재미 봤다. 그도 항상 주변에 들끓든 화가, 패션디자인 그리고 음악인들의 사소한 아이디어들을 흘려버리지 않고 담아두었다가 자신의 예술적 감각으로 버무려 사업을 시도해 성공한 사람이다. 또한, 주위의 어려운 사람에게 항상 베푸는, 그의 별명이 밥사라던가? 각박한 뉴욕에서 얼마나 훈기가 넘치는 별칭인가.

이혼남인 그가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우리 저녁 초대에 와이프와 동행해도 되나?” 고 물었단다. 재혼했나? 누굴까? 몹시 궁금했다.

주위가 훤해진다 싶더니 그가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으로 이형~’ 하고 나타났다. 그 옆에 낯익은 듯한 와이프와 함께
어디선가 뵌 것 같은데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차분한 분위기를 띤 그야말로 염화시중의 미소만 지었다
어디서 뵀더라?” 
남편에게 물었다. 
보긴 뭘 봐. S 그룹 회장 사모님이 나타난 줄 알았네.”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며 괴로워하느니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고 맞는 사람 만나 삶을 재창조해야 함을 밝은 표정의 그를 보며 절실히 느꼈다.

우리 결혼생활은 행복한 거야?” 
물어보며 남편을 쳐다봤다. 대답이 없다. 한참을 뜸 들이다 
뭐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박물관 피스(pieces)인데.”

Friday, October 21, 2016

Our couple is museum pieces

" Long time no see youI’ve called you a few times and it was out of work. I was wondering if you had a problem with your family. "How are you and your wife?" "We are a constant museum piece."

Move to a place in Manhattan and eliminated studio phone that had been using the same number for more than for 30 years. My husband replied that we are doing well to the question of whether or not our couple is 'divorced'.

The people who have not been contacted in the meantime have doubts that our couple is divorced. My husband once had been away for a year teaching in Seoul Korea. The children wrote an awkward Korean letter saying, "Why is not my dad coming home? Some acquaintances hesitate carefully and asked, 'Did you divorce?' Even the neighboring Hispanic man put his head over the backyard fence to flirt with me.

Anyway, in people’s minds, they remember a person they once associated with as hate, gratitude, or longing. This friend who made a phone call with my husband is a person who is remembered with gratitude in my heart. I want to treat him to dinner when we got a chance.

Once the New York real estate developers have invested in the slum area where artists are flocking as if a fierce hawk had been gaining food in the blue sky. He is always the one who succeeds in trying to make business with his artistic sense by keeping it around without letting go of the little ideas of artistsfashion designers and musiciansAlsoalways giving to difficult people around himhis nickname is 'Bobsa (A person who treats meals)? What a warmth nickname it is in tough New York.

He who is a divorced man asked the our evening invitation with several people, "Can I accompany my wife to a dinner invitation?" Has he got married again? Who is it? I was very curious.

He appeared health and cheerful, as he seemed to be getting better. With a familiar wife beside him, when I asked, “I think I’ve seen you somewhere?" she simply smiled. "Where did I see her?" I asked my husband, “I thought the wife of the S group president show up.”

Looking at him with bright face, I felt that people should get rid of a day and recreate their lives with right person as soon as possible, rather than suffering from continuing an unhappy marriage,

"Is our marriage happy?" I looked at my husband and there is no answer. After a long pause, “I am supposed to be happy. What can I do because we are the museum pieces?”

Saturday, October 8, 2016

부러운 친구

남의 것에 별로 관심 없는 나도 서부에 사는 친구가 RV(캠핑카)로 미국 전역을 들쑤시며 누비다 새로운 행선지에서 혼자 보기 아깝다며 전화할 때는 부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

우리도 하나 장만해서 여행 다니자.’고 했다가는 유목민 귀신이 붙었냐? 뉴욕서 하는 짓거리는 어떡하고? RV 한대 사줄 테니 아예 가출하시던지.” 라고 남편이 소리 지를 것이 뻔하므로 입을 다물긴 했는데. ‘RV 캠프장은 고급 호텔보다 자연풍광이 더 좋은 곳에 많다.’는 말에는 당장에라도 한 대 장만하고 싶었다.

친구 남편은 사진작가로 카메라를 들고 RV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작업한다. 그러나 집 귀신인 내 남편, 게다가 순수미술을 직업으로 갖은 우리는 작업에 필요한 오만 잡동사니뿐만 아니라 넓은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작가들 모양 야외에다 이젤 받쳐놓고 풍광을 담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지난여름 캐나다 동쪽 끝 노바 스코티아를 갔다. North 95로 가야 빠른 길인데 내비게이터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이 이리저리 헤매다 North 87로 가는 바람에 저녁나절이나 돼서야 벨페스트, 메인( Belfast, ME)에 다다를 수 있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가다 쉬다를 제멋대로 반복하는 남편의 고약한 버릇 덕에 RV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캠프장에서 하룻밤을 묵게 될 줄이야!

기대하지 않고 들른 벨페스트 메인(Belfast, ME)은 하얀 요트들이 정박한 그야말로 아름답고 한적한 포구였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가 묵을 곳을 물었지만, 페스티벌 기간이라 근처 1시간 이내에는 빈 숙소가 없단다. 캠프장의 케빈도 예약이 찼다. 그나마 운이 좋아 캠프장에 차를 주차하고 하룻밤 묵었다. 바닷가 갯벌 바로 앞 RV들과 텐트들이 줄지어 늘어선 이런 곳에서 친구도 머물겠지?

머리 허연 중 늙은이 부부가 차에서 하루 잔다고 하니 그네들도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마침 예약이 취소된 케빈이 있다며 우리를 찾아와서는 지불한 주차 비용으로 됐다며 빨리 옮기란다. 세상에 이 좋은 메인(ME)주 인심! 각박한 뉴욕에서 온 우리는 그저 땡큐, 땡큐 만 연발했다.

아침 일찍 바닷가를 거닐며 주차된 RV들을 관찰하다 자그마하고 둥근 스테인리스로 만든 RV가 눈에 들어왔다. 겉모양새가 요즘 한창 붐인 쿠바 하바나에서 굴러다니는 1950년대 미국 승용차 사촌쯤 돼 보이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아우~ 요런 것 하나 좀…!” 중얼거리며 남편의 반응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저 멀리 모래 섞인 자갈밭을 걷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 굳은 몸으로 먼동이 트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캐나다 국경도 넘지 못하고 차를 돌려 집으로아이고 입 다물어야지.

Friday, October 7, 2016

An envious friend

I do not care much about others, But I envy my friend to ride all over the U.S. with a RV

I gave up trying to say 'let’s get RV and go on a trip.’ Because it’s obvious that my husband is going to shout as follows "Are you haunted by a nomad ghost? Or what about all the crap you’re doing in New York? I'll buy one a RV, so get out of the house.” But I wanted to buy one right away when I heard that the RV campground is more of a place where natural scenery is better than a luxury hotel.

My friend’s husband works as a photographer with his camera around the world with RV. However, my husbandwho is a ghost of the houseand the fine arts as a profession, he needs a lot of work items and a large working space. However, like the 19th century French impressionist artist, it is not possible to go back to the days when used to draw their natural landscape on a canvas put on easel outdoors. 

Last summer my husband and I went to Nova Scotia on the eastern end of Canada. It was a fast way to go to route 95 north, but my husband, who does not listen to the navigator, wandered back and forth to route 87 north and could reach Belfast, ME by evening. Thanks to the nasty habits of my husband who does not make reservations, we stayed overnight at a campground full of RVs!

Unexpectedly, Belfast was a beautiful, secluded port where white yachts anchored. I went to the information center and asked where we would stay, but during the festival period, there are no vacancies within an hour. Cabin of the campsite was full. I was so lucky I parked my car at the campsite and stayed overnight. In front of the beach, where the RVs and tents lined up, would my friend stay in a similar place?

The owner of campsite must have felt sorry for the old couples, which have a white-haired to sleep in a car. He said, “there is a cabin that reservation has just been canceled, so let’s move it quickly.”

Early in the morning I watched the parked RVs walking on the beach. I saw a RV made of small, round stainless steel. I liked the appearance similar to the 1950s American car rolling in Havana, Cuba, which is booming nowadays. "I want to have this one." I turned my head to see my husband's reaction. Suddenly, he was walking far away in a sandy gravel field.

He is looking at the sea, which is as if he is thoughtful and firm. If I annoy his temper, I couldn’t even cross the Canadian border. I'd better keep my mouth shut.

Saturday, October 1, 2016

빨래를 개면서

설거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나는 음식 만들기도 싫어한다. 그러나 집안 정리정돈 하는 것은 즐긴다. 깔끔한 공간에 앉아 뽀송뽀송한 빨래 개는 것을 특히나 좋아한다.

포근한 빨래를 만지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아이들 옷을 갤 때는 빠듯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떠오르고 남편 것은 남편대로 옛일에 젖어 든다.

동기동창인 남편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도 얼굴 한번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마 다른 여자 동기생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섣부른 어떤 인연도 만들고 싶지 않아 시선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엮이면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가난한 미술 전공하는 남자와의 인연을 그 누가 엮이고 싶었겠는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이 선명한 장면, 70년대 초 봄날 야유회를 위해 청량리 역전에 모이기로 한 날 몇몇 여학생이 운전사 딸린 자가용으로 도착하는 모습에 평소에도 남학생들의 빈한한 표정들이 더욱 눈 둘 곳을 몰라 난감해했다. 그렇듯 여자 동기 대부분은 넉넉하고 인물들도 멀끔해 기다렸다는 듯이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서두르곤 했다. 그러나 난 몇 번 중매쟁이를 통해 선본 남자들의 지랄 같은 요구 조건에 질려 때려치우고 유학을 선택했다.

혼기 놓치고 이 커다란 미국 땅 뉴욕에서 수업 시간에 시선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동기를 만날 줄이야. 그것도 선배의 소개로.

결혼해? 말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못 하겠지? 결혼은 둘째치고 아이도 낳지 못하고 혼자서 늙어가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결혼하자고 적극성도 띠지 않는 남자에게 결혼하자~” 고 했더니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안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각자 등록금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그나마 없이 시작하는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는 현실적인 공감대가 작용했다. 물론 졸업 후에도 미루는 것을 윽박지르다시피 시티홀로 끌고 가 겨우 결혼했다.

치사하지만, 그 당시 내가 눈 낮추고 자존심 버리고 고개 숙여 결혼했으니 그나마 어릴 적 별명이 감자인 남편 밑에, 도토리 같은 큰아들과 밤톨 같은 작은 놈이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난 외로움도 모르고 현실적인 인간이라 결혼 못 하고도 무자식이 상팔자다.’라며 잘 살겠지만, 내 양손을 잡은 아이들과 맨해튼을 걸을 때면 자존심 버릴 때 과감히 버렸더니 요 알밤 같은 놈들을 얻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자존심만 붙들고 살아가겠지?’ 하며 씩 웃는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 뭐가 그렇게 좋아요.” 하고 아이들이 묻는다. “그런 게 있어. 자슥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