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 ‘똑똑 똑.’ 도시의 소음이 눈 속에 파묻힌 듯 조용하다.
모처럼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떠나고 없으니 물에서 빨리 나올 일이 없다. 젖은 몸을 감싸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솜 뭉치만 한 함박눈이 쏟아진다. 이렇게 따뜻한 실내에서 차가운 밖의 쏟아지는 하얀 눈을 보며 작은 행복에 빠진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시원스런 친구다. 눈이 내리거나 비 오는 날이면 잊지 않고 전화한다. 그런 그녀의 배려로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친분을 유지해 왔다.
축 처진 눈을 어찌하면 올려 보이게 할까? 하며 눈 화장을 짙게 해본다. 나갈 일도 만날 사람도 없지만, 화장한 얼굴에 모자를 이리저리 써 보고 싶은 날이다.
전화벨이 또 울렸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사는 마음이 곱고 딱 부러지듯 경우가 밝은 친구다. 그녀는 바쁜 이민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어려운 일을 조용히 혼자 떠맡아 하는 작은 거인이다.
눈은 멈출 기미가 없이 쏟아진다. 어제 만들어 놓은 애플 빵과 차를 천천히 마시며 오늘은 그냥 이렇게 하루를 보낼까? 한가히 있어 보는 거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전화벨이 또 울렸다. 마치 눈 오는 뉴욕을 감지라도 한 듯 디트로이트에 사는 친구의 전화다. 학창시절부터 만나 싱글 시절을 함께하다 이 큰 나라에 와서는 얼굴 마주 본 지 3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전선을 통한 이야기만이 우리들의 가느다란 만남을 이어주고 있다. 눈이 쌓이듯 이야기는
조곤조곤 이어졌다.
세상이 눈 속에 묻혀 하얗게 사라지는 날에 사람들은 반대로 잊힌 기억을 파헤치며 옛사람을 그리워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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