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밤새 추적추적 오다 새벽에 그쳤다. 작년, 그날도 지금처럼 비 오는 늦가을, 여자 넷이서 친구 집에서 놀았다. 이번에는 다섯이다.
그 당시 가지 못한 세 명이 합세하고 함께했던 두 친구는 빠졌다.
초대한 친구가 미리 준비한 푸짐한 식탁이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린 듯 온기를 잃었다. 붉은 노을을 품은 강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술맛, 느긋함에 푹 젖었다. 다음 날 아침, 물안개 사이로 드러나며 반짝이는 하얀 돛단배를 보며 마시는 진한 커피 향내에 시간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낭만의 대학 시절로 돌아갔다.
언덕진 사과밭에서 내려다보는 잔잔하면서도 화려한 색채를
뿜어내는 구릉들은 노을을 받아 더욱 농염한 빛을 발했다. 잎을 떨구기 전 마지막을
발산하는 마치 황혼기에 우리를 닮은 듯해, 할 말을 잃었다.
사과나무 밑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옷에 쓱쓱 문질러
한입 물어본다. 달콤한 물이 입안을 적신다. 친구 집에서 며칠 놀다 온다는 흥분으로 설친 간밤의 피로가 확 씻겨나갔다.
단풍색이 다 다르듯 사과밭을 거니는 우리 여자 다섯도
다르다. 성격, 사는 방법,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르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그런대로 뭉뚱그리며 잘 지낸다.
만약 단풍색이 한가지 색이라면 무미건조함에 가을의
정취를 과연 느낄 수 있을까? 낙엽색이 다 달라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듯 친구들도 각각 다다르기에 우리의 황혼기는 더욱 알록달록 알콩달콩 알차다.
낙엽이 가까이서 보면 각양각색이지만 멀리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미묘한 색감의 단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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