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보다 뉴욕에서 더 오래 살았다.
먼 이국땅에 유학 와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림 그리겠다고 고집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이민자이기도 하다.
가끔 이민자라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나만의 어린 시절 겪었던 자그마한 기억 속의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 뿌듯하다.
시골집 개울가에서 목욕하고 바위 위에 빨아 널은 바삭바삭 잘 말려진
옷을 입으며 그 따사로움이 몸서리치도록 좋았던 기억, 앞마당 멍석에 누워
귀뚜라미 소리 들으며 마실 나온 친구들과 정을 나누던 저녁나절들, 불공드리는 엄마의 하얀 고무신을 누가 신고 가지 않나 지키며 사찰 마당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있다.
결혼해서 그림 그릴 만한 공간도 없고, 재료 살만한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이나 잘 키우지!” 하는 남편의 핀잔을 들을까 봐 모두가 잠든 밤에 식탁에 앉아 화가인 남편이 쓰다 남긴 재료로 그렸다. 그 밤에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남편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만들어 내는 그림이 뭐 그리 대단한 아이디어와 철학이 있겠는가? 그저 그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내게 닥친 일상의 감정을 화폭에 옮기니 외로운 여자, 지친 여자, 생각하는 여자, 순간을 즐기는 여자가 그림 속에서 살아났다.
결혼 생활 30년이 지나 먹고살 만해져 스튜디오도 생기고 여유로워지자 외로운 여자,
지친 여자,
생각하는 여자는 ‘건드리지 마.’ 를 입에 달고 더는 참고
살 수 없다며 반항하기 시작했다. 건드리면 황혼 이혼이라도 강행할 기세다.
‘불교의 스승들은 인간에게는 두 가지 고통이
있다고 가르친단다. 하나는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막상 가져보니 그것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가져보니 확실히 편하기는 하지만, 뭐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에 30년 참고 살아온 의지가 무너지며 내 성질 꼴리는 데로만 하고
싶다.
일기를 쓰듯,
마음이 가는 데로,
아는 것만큼 오랫동안
작업하다 보면 언젠가
내 그림 속에 성숙한 여자가
서 있지 않을까?
했던 바람은 물 건너가고 건드리면 폭발할 듯한 여자가 혼자 외롭게
서 있겠지? 이대로 가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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