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14, 2015

아쉬운 까닭은

다리 달달 떠는 발레가 뭐가 좋다고 갑자기 간다고 난리야. 나 원 참

한국장엘 가지 않아 김치 먹어 본 지가 꽤 됐다. 이렇게 춥고 눈 쌓인 겨울엔 묵은 김치찌개와 김, 송송 썬 파를 곁들인 명란젓을 얹은 따뜻한 흰 쌀밥이 먹고 싶다.

마침 남편이 차이나타운 근처에 갈 일이 생겨 김칫거리를 사려고 따라나섰다
눈도 펄펄 오고 이왕 나왔으니 우리 이스트 빌리지 근처 일식집에 갈까?” 
사시미에 따끈한 정종 좋지.” 
깔끔한 일식집에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칼칼한 목젖을 싸악 적시는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링컨센터 티켓이 생길 때마다 전화하는 친구가 발레 티켓이 있다며 만나자는 전화다. 김칫거리와 일식집은 다음에도 갈 수 있지만, 발레는 오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차 좀 돌려요.”

자고 나면 일주일이 후딱. 그리고 일 년이 후딱. 스치는 인연처럼 가던 세월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날다 어느 해부턴가 번개 치듯 눈 깜박할 사이 사라진다. 누구 말마따나 60대에는 60마일 70대에는 70마일 속도로 시간이 간다할 일은 많은데 머리와 몸이 원하는 만큼 따라주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니 아쉬울 수밖에. 아침에 일어나 작업할라치면 어둑어둑 지는 해가 커튼을 치듯 창밖에 떡하니 와 있다. ‘오늘도 이렇게 가는구나!’ 하는 서운함에 오늘 해야 하는 일, 찾아온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상상하는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하얀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달달 떠는 환상적인 발레가 아니었다. 무대 밑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한눈에 보이는 가장 앞좌석이기도 했지만, 내 눈엔 의상 배경 율동이 현대 미술관에 들어서며 컨템퍼러리 미니멀 아트(단순함을 강조하는 현대 미술)를 감상하는 듯했다.

휴식 시간에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곱게 차려입고 나온 나이 든 사람들이 많다. 풍요로운 조상 덕에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듯 예술에 조예가 깊어 종종 찾아다니며 보고 느끼는 그들의 문화생활이 부럽다.

미국에 살면서 아쉬운 것이 이민자들이 보는 수박 겉핥기식 미국문화가 아닌 그들 고유문화를 자연스럽게 체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늘 마음 한구석에서 맴돌며 한국 남편과 살아 이들의 생활과 문화를 제대로 알지도 배우지도 못한 점이다. 그렇다고 30년 넘게 살아준 고마운 남편을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남편의 배반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악다구니 쓰며 울고불고 난리 치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리라.

모국의 우리 세대에 유행한다는 억지 춘향 로맨티시스트처럼 외국인과 연애하며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배우고 느끼며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졌는데 Why not? 글쎄, 늙어서 될까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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