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다 떨어진 초겨울, 가장 아끼는 후배가 뉴욕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간단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낙엽 지듯 슬금슬금 떠난다. 나이 든 선배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후배들은 한국으로. 남편과 나만 남겨지는 것은 아닌지?
백 팩에서 주정뱅이 보따리처럼 막걸리와 안주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겁지 않으면 더 사올 수 있는 긴데."
술이 들어가면 목청이 올라가며 속 시원히 할 말 다하고 선배인 우리 부부에게도
평소 불만을 안주 삼아 토해내는 후배다.
술이 약해졌나? 취했는지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점점 찐해졌다. 화장실 가는 줄 알았는데 긴 부스에 다리를 쑤셔 넣느라 낑낑거리며 간단다. 하기야 한소리하고
또 하는 선배와 술 마시는 것도 시들하겠지. 예전엔 술 마시다 한잠 자고 일어나도 새벽까지 술상을 지키고
앉아있더니만.
"전화해봐. 올 수 있는지?”
남편과 술 마시다 흥이 나면
“야,
와라. 우리 한잔하는데?”
이미 술 취한
목소리로
“나도 지금 한잔하고 있어요.”
“작작 좀 마셔라.”
“선배님 싸랑해요.”
“누구야~”
대낮인데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받는지 신소리로 대꾸한다.
“야, 너 어제 또 펐구나? 아직 뻗어 자게?”
그러고 보니
예술보다는 애술 빙자로 오랜 세월 함께 했다. 선배가 돼서 좋은 본보기도, 도와주지도 못하고 떠나보내는 것이 미안해 엉뚱한 곳만 쳐다보고 행설수설.
혼자 뉴욕에서 고생하며 사는 것이 안되어 외국인을
배필로 중매 서려고 했는데 '한식을 마음 편히 먹고 살아야
한다.’고 고집해서 그나마도 무산됐다. 그래, 한국이 잘 산다는데 가라. 가서 한식 실컷 먹고 좋은 작업 많이 하고 외롭지 않게 잘 살아라.
남편과 셋이서 어깨동무하고 이리저리 함께 흔들리며
지하철 정류장까지 걸었다.
“선배님 싸랑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알지요?”
“야 취했냐?”
“싸랑해요.”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는 등에 대고
“나도 너를..."
“다 가고 우리 둘만 남는 거
아니야? 우리 동창 중에 제일 먼저 와서 끝까지 남아 뉴욕을 지키는 사람은 우리뿐인가 봐.”
“우리야 갈 곳도, 오라는 사람도 없어 어쩌다 남았지.”
“왜 하필이면 나뭇잎이 우수수 다 떨어진 이 스산한 초겨울에 가냐고 심란하게.”
"당신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해. 내 술친구 해주려면. 자기가 나의
Best friend야.”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잡은 손을 빼더니 대꾸도 하지 않고 저만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