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나뭇잎들이 울창해진 한여름, 매우 더운 날씨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찜통더위에 낳았다니!
조깅을 하고 오니 작은 아이가 해시브라운에 베이컨과
스크램블을 만들어서 아침상을 차려놨다. 큰 아이는 프랑스에서
주문했다는 선물 박스를 내밀며
“엄마, 해피버스데이.”
“당신은 아무것도 없어?”
남편을 쳐다봤다.
“하루하루를 생일처럼 잘해줬는데 새삼스럽게, 오늘 저녁은 외식이나 하지.”
“너희는 어릴 적부터 말 잘 듣고
잘 자라줘서 아빠 말대로 엄마에게는 날마다 생일이고 마덜스데이었다. 고마워.”
선물과 아침상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또 다른 선물, 아이들의 립 서비스가 이어졌다.
“엄마는 so cool 해요.”
“정말,
뭐가?”
"친구들이 그러는데 엄마들이 바더(bother. 귀찮게)해서 힘들데요.”
“나도 귀찮게 하잖아?”
“아니요. 엄마는 안 그래요.”
“아이고 고마워라. 이왕 너희를 낳았는데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힘들게 해서 누구 좋으라고.
혹시 엄마가 귀찮게 하면 말해. 고칠게.”
난 또 쿨하다길레 내가 멋있다는 줄 알고 좋아했더니
저희를 들볶지 않아서 좋다니. 요것들이 아예 귀찮게 못 하게
연막을 치는구나. 도대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헷갈리네. 쿨하다는 소리까지 듣고서 앞으로 어찌 잔소리할 것인가.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엄마의 잔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돌아가신 엄마가 어떤 잔소리를 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희미하다.
그 당시는 분명히 듣기 싫은 소리였는데, 지금은 소중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이불에 둘둘 말아 윗목에 밀어 놓고
"무엇이 되려고 이리도
게으르냐."
걱정하던 엄마.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는 것도 귀찮아 방구석 여기저기에 쑤셔 박아 놓은 것을 하나씩
꺼내며 한숨짓던 엄마가 나에게도 있었다. 늦잠자고 일어나, 어스름한 저녁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놀러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너 어딜 또 가니?"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남자 친구에게 체이고 들어오면
“우리 딸이 너무 과분해서 감당하기 어려워 물러난 거야”
“우리 딸이 너무 과분해서 감당하기 어려워 물러난 거야”
위로해 주던 다정한 엄마가 있었는데.
내가 태어난 날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엄마 배 속에
있었던 모습으로 무릎을 한껏 구부리고 종일 누워 있고 싶다. 눈을 감으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며 잔소리하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잘해준 우리 엄마가. 아! 옛 시절 엄마가 있던 그 따뜻한 지붕 밑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