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25, 2012

운 좋은 사람들


아니지. 아니야! 그랬으면 별명이 감자인 남편도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밤톨 같은 큰 아이 그리고 도토리 닮은 작은 아이가 없었을 텐데.’

?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요즈음 북클럽에서 책 읽는 것만큼만 했어도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감자, 밤톨 그리고 나의 귀여운 도토리를 떠올렸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짙은 감청색 교복 속에 상기된 살구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분을 뽀얗게 바른 북클럽 친구들은 학창시절처럼 즐겁다.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나서도 집에 일찍 가지 않는다. 신 나게 놀다 어두워져야 간다. 그러나 그 어린 시절과는 달리 허드슨 강가에 앉아 저녁노을을 보며 그날 배운 강의를 복습한다. 저무는 노을 같은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커지자 한가해진 나는 삶에서 뭔가 빠진 허전함에 헤맸다. 이국땅에 와서 악착같이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이 지내다 어느덧 한숨 돌리면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고나 할까? 순수함이 결여된 내 모습에 나도 섬뜩했다.

나를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작년 7, 친구의 소개로 북클럽에 갔다. 기대하지 않고 첫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좋은 강의를 그동안 나를 빼놓고 저희끼리 했단 말인가! 지난 3년간 북클럽에서 읽은 책과 강의는 어디 가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에겐 지 모르는 배반감이 들었다.

일 년 후 올 7, 북클럽에서 영어 사전을 뒤적거리면서 에디스 와튼(Edith Wharton)의 순수시대 (The age of innocence)를 읽었다. 선생님의 강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사람이 사는 모습에는 4단계가 있다고 강의하셨다. 1단계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에 연연하는 삶, 2단계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삶, 3단계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는 삶, 4단계는 우리 나이에 딴 동네 취급한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에 존재하는 물질이 있단다.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가고 있다고 하셨다.

3단계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2단계로는 살아야 한다며 서로에게 
자기는 아직 1단계야. 분발해.” 
놀리고 깔깔 웃으며 우리는 복습했다.

선생님께서 알고 있는 세상을 애타는 열정으로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는 강의는 전율이 되어 내 몸 안으로 치닫는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눈 뜨며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리고 친구에게도 전달되어 함께 기뻐한다.  한 달이 지나면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어 마음이 설레는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둔 운 좋은 사람들이다

Friday, August 24, 2012

Lucky people

‘No, no, no! I wouldn’t have met my husband, whose nickname is potato, nor would there have been a elder son like a chestnut and a younger son who looked like an acorn.’

Why? Didn't I study hard when I was in school? If I had done as much as reading a book at a book club these days, what would I become like now? Thinking of those, I came up with potatoes, chestnuts and my cute acorns.


Although we are not an apricot-like face in a dark blue school uniform, my friends in a book club with white powder are as happy as they were during their school days. We don't go home early even after the book club is over on the second Wednesday of every month. Unlike our childhood, we sit by the Hudson River, watching the sunset and reviewing the lecture we learned that day. 


As my children grew up, I have a lots of free time and lost in the emptiness of life. I was busy living in a foreign land, but I took a breather and looked back at myself. With the thought of updating me, I went to a book club with a friend last July. 


I took the first lecture. What a great lecture they've been taking without me! Where can I get books and lectures I have not read in the book club for the past three years be compensated? I felt betrayed.


A year later, in July, I read Edith Wharton's 'The age of innocence' in a book club. Although it does not correspond exactly to the teacher's lecture, I have heard that there are four levels of human life. Step 1 is a life in which people cling to money to solve their food clothing, and shelter sources. Step 2 is about pursuing a mental inner world, Step 3 is about affecting and leading the lives of others, and Step 4 is about o change the perception of science that has been treated as a different at our age." We don't see it now, but there's a substance between organic and inorganic matter. Teacher said was scientifically proving its existence.


We may not be in the third stage yet, but we must live in at least the second stage. We teased and laughed each other, "You're still Stage One. Try harder," 


The passionate lecture to deliver us what the teacher knows went into my body with shudder. I open my eyes to a world I've never known before and feel infinite joy and rejoice together as it passes to my husband, children, and friends.


After a month, we will be able to see another new world, and we are the lucky people who have a great teacher next to us.

Saturday, August 18, 2012

단편과 장편

몇 년 만에 서울에 나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딸아이 옷 빌려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이 먹을수록 젊게 입는 것도 좋지, 워낙에 날씬하니까 뭔들 못 입을까.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웬 남자가 줄레줄레 멋쩍어하며 따라 들어오는 게 아닌. 이건 또 뭐야!

남자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죽 훑어보며 누구냐고 눈으로 물었다. 
이 근처에서 만났다가 헤어지려고 했는데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 
눈치를 보니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 같다. 남자가 인상이 좋지 않다. 많은 서울 아낙이 남편 외 애인이 있다고들 하던데 이런 경우인가? 창밖을 내다보며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다. 친구가 안 되겠다 싶은지 남자를 돌려보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이혼했어? 
이혼은, 그냥…” 
이왕이면 네 남편보다 좀 근사한 사람을 만나지 어째 네 남편보다 시원치 못하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갑자기 섰는데 친절하게 도와주길래 고마워서 차 한잔 마시다 친해졌어. 보기보단 로맨틱해. 
, 네 남편이 어때서? 돈도 잘 벌고, 성실하겠다. 
우리 남편, 장편이라 지루해, 단편이 읽기가 흥미진진하잖아. 
"어쭈~ 이 여편네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그녀는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미국에서 방문한 나에게만은 대담하게 보여줘도 이해할 거라고 착각한듯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라고 어릴 적부터 듣고 살아왔다. 실지로 미국에 오니 길을 지나가도 쳐다보거나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그리 쉬울까?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려면 능력이 있어 돈 걱정 없이 살아야 하고, 법망에서 벗어나려면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영어를 잘해서 미국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는 신용을 잘 쌓아 믿음을 줘야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가십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말조심,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

유유자적 물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오리도 물밑에서는 부지런히 오리발을 수도 없이 움직인다. 이렇듯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욕심 자체를 버린다면 모를까단편을 만나고 다니는 것은 또 다른 구속이다

친구는 길고 지루한 장편인 남편에게 돌아갔다. 남편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친구의 표정은 지루했다. 그러나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처럼 편안한 모습이다.

Friday, August 17, 2012

Short story and long story

I met my friend in Seoul after a long time. The friend appeared to have borrowed her daughter's clothes that unfit for her age.

It's fine, the older you get, the better you are to wear younger. She can wear anything because she is so slim. But she was not alone. A man followed her. What the hell is this?

I looked the man from head to toe and asked her who he was. "We met around here and we were going to break up, but we came all the way here." I noticed that it was like that. The man is not good impressed. I heard many wives who live in Seoul has other lovers than her husband. Is this the case? I sat looking out the window. She sent the man away looked at my blunt expression

"What happened? Did you divorce?” “Divorce, just…" "Why don't you meet someone who's a little better than your husband? He's not as cool as your husband." "My car stopped suddenly on the highway. He kindly helped me. Thanks to him, I got close after drinking a cup of coffee. He’s more romantic than he looks." "What's wrong with your husband? He makes good money, and be sincere." "My husband, he's boring because he's a full-length novel. A short story is interesting to read." Oh, no~ what is she talking about.

She seemed to think that I would understand her if she showed her freedom in boldness to me who came from America. The United States has heard and lived since childhood as a free country. Indeed, no one is looking at or meddling me on the street in the United States. But is it so easy to be a true free man?

To be free economically, one has to live without worrying about money. You have to obey the law well to get out of the law. Being good at English make not having any inconvenience in American life can free you from language. You must build trust in your husband so that can maintain a harmonious relationship. If you don't want to be a gossip, you have to be careful of what you say and behave.

Ducks that move smoothly on the floating surface of water also move their feet numerous times under the water. Shouldn't we pay for our efforts in order to be free? Wouldn't you know if you abandoned your desire to be free?

Meeting a short story man is another constraint. Friend went back to his long, boring a full-length novel, the husband. The expression of my friend who visited New York with her husband was boring. But she looked as comfortable as a duck floating on the water.

Saturday, August 11, 2012

시어머니의 명주 이불

1984년 7말도 요즈음 날씨처럼 몹시 더웠다. 그런 찜통더위 속에서 결혼식을 해야 했는지

당시 6개월 전, 우리 부부는 뉴욕시청에서 혼인 서약만 했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혼례를 치르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 성화에 결혼식을 하러 시댁이 있는 LA로 끌려가듯 마지못해 갔다.

식장은 형님이 다니던 아담한 교회. 결혼 후 성경공부를 해서 세례를 받겠다는 목사님과의 약속하에 정해졌다. 드레스와 화장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작은 시누이와 화가인 큰 시누이가, 사진과 꽃은 사진을 전공한 도련님이 맡았다. 케이크와 파티 음식은 알래스카 최북단 북극해 연안에 근무하시며 평생 서양음식을 만드신 시아버님이 와서 손수 준비하셨다. 난 그저 시집 식구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신혼여행만은 가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은 서른이 된 노처녀 딸이 시집가는 게 신이 났다. 커다란 이민 가방 두 개 가득 예단이라고 가져왔는데 무엇을 해 왔는지 볼 생각도 없이 나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뉴욕으로 돌아왔다.

결혼 28년을 살면서 그 커다란 두 개의 이민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시어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하나씩 알게 되었다.

주말마다 1시간 정도 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당신이 살면서 겪었던 참혹한 장면들을 마치 활동사진처럼 들려준다. 그 단골 중 하나가 피난 가서 겪은 겨울 이야기다. 그것도 몹시 추웠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린 딸이 죽어 눈 덮인 땅에 묻었단다. 묻고 오면서 뒤돌아 보니 당신 혼자 파신 언 땅이 깊지 않아 죽은 아이의 하얀 손발이 흙 밖으로 뻗어 나와 있더란다.
“어머니, 어찌 자식을 그렇게 묻고도 지금까지 살 수 있었어요?” 
“남은 자식도 굶어 죽게 생겼는데 어찌하겠니. 머리통이 큰 아비(내 남편)를 낳다가 죽다 살아나 얼음을 깨고 냇가에서 기저귀 빨래를 하는데 손이 시려워서."
로 이어지는 여름보다는 겨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신 시어머니는 솜이불을 무척 좋아하신다.
“네 친정엄마가 예단으로 해온 명주 솜이불이 어찌나 따뜻한지 지금까지도 그 이불을 덮는다. 그렇게 좋은 솜은 내 생전에 본 적이 없다. , 가을용 모시 이불은 얼마나 고운지 아까워서 덮지 못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가 아껴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요즈음은 덮는다. 잠들기 전에 모시 이불에 놓은 수가 하도 고와서 들여다보고 또 본다. 여름 삼베 이불도 시원하니 너무 좋다.

밍크코트를 명품 백을 해 드린 것도 아닌데 내가 시집올 때 해온 이불을 품에 끼고 좋다고 하시는 시어머니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시집은 가긴 잘 갔군.’ 
서울에 계신 친정아버지도 
네가 서울에서 결혼했으면 돈 많이 깨졌다. 요즈음 세상에 예단을 그렇게 해가면 소박맞는다. 너의 시부모님이 워낙 욕심이 없고 점잖은 분들이라서 그렇지. 시부모님 잘 모셔라.”

아들만 둘인 내가 며느리 볼 때는 옛날 옛적 어디선가 예단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는 기억조차도 잊어버리련다. 둘이서 서로 도와가며 잘 살아만 준다면 그것이 예단이요, 효도라 생각하리라.

Friday, August 10, 2012

Mother-in-law's silk blankets

The end of July 1984 was as hot as the weather these days. Should I have married in such a heat wave?

Six months before the wedding, our couple made a wedding vow at the New York City Hall. We couldn't even think of having a plausible wedding like everyone else. However, at the insistence of both parents, we reluctantly were dragged to Los Angeles where my in-laws live to have a wedding ceremony.

The wedding hall was a small church that sister-in-law attend. The officiating ceremony was set under a promise with the pastor to study the Bible after marriage and be baptized. Two sister-in-law who majored in fashion design and fine art handled dress and makeup. And brother-in-law who majored in photography helped photos and flowers. The father-in-law, who worked on the northernmost Arctic coast of Alaska and made western food for life, made a cake and party foods. I just did what my family-in-law members told me and didn't go on a honeymoon.

My parents were excited that their 30-year-old daughter was getting married. They brought two large suitcases full of wedding gifts for in-law's family from Seoul. I returned to New York as soon as the wedding was over, without seeing what was in the bag. After 28 years of marriage, I learned one by one what was in the two large bags through a telephone conversation with my mother-in-law.

The mother-in-law's story, which takes about an hour every weekend, always reminds her of the terrible scenes of her life. It also starts with very cold winter memories. Her little daughter died and she was buried in the snow-covered ground. As she looked back, the white hands and feet of the dead child stretched out of the dirt, because the frozen land she dug alone was not deep enough.

"Mother, how could you have lived after burying your child like that?" She said, "What shall I do when my other child is about to starve to death?" My mother-in-law, who has vivid memories of winter rather than summer, loves the cotton blanket my mother gave me as a gift.

"Your mother's padded silk blanket is so warm that it still covers it. I've never seen such fine cotton in my life. Spring and autumn ramie blankets were too precious to cover. I am old enough to die at any moment, so I use them these days. Before I go to bed, I look and see again and again at the flowers patterns on the blanket of the ramie. I love summer threefold blanket because they are cool, too."

I didn’t give her a designer bag or mink coats, but whenever I heard my mother-in-law saying she liked the blanket my parent gave when I married, I said, "I married well."

My father in Seoul said, “If you were married in Seoul, it cost you a lot of money. These days, if we give the wedding gifts that way, you were mistreated. Your parents-in-law are not greedy. Take good care of your parents-in-law.”

I have only two sons. When I will get daughter-in-law, I will forget even the memory that once upon a time there were wedding gifts for in-law family. If the two of they help each other and live well, I will think it is wedding gifts and filial duty.

Saturday, August 4, 2012

귀에 익은 목소리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그러나 아무개라고 말하는데도 누군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드디어는 
아아~ 혹시 복학생. 
키 크고 구부정했던, 수업시간에 등 뒤에서 딴 동료와 수군거리던 그 목소리가 기억났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인터넷으로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지. 
죄짓고 숨어 살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구나
나 누구랑 결혼한 지 알아요?"
알아. 
매우 반가워 나의 긴 수다가 펼쳐지려는 순간 
우리 만나서 예기하지. 
? 지금 전화로 더 예기하면 안 되나? 
좀 그래서. 
그럼 내일 3에 우리 집 어때요?

졸업 후 만나지 못했던, 서울에서 온 옛 대학 남자 동기를 만난다니 갑자기 기운이 솟구쳤다. 부지런히 청소하고 이것저것 술안주도 준비했다. 시간이 다 되어 커튼을 젖히고 내다보고 내다봐도 오지 않았다. 조바심이나 문밖에 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를 서너 번. 4시가 다 되어 부인과 함께 나타났다. 대학 4, 인생에서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다. 그러고도 30여 년이 지났건만 서로의 형편을 다 알기라도 하는 듯 반가웠다.

식탁에 앉기가 무섭게 서울에 사는 동 소식을 물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못했단다. 오히려 뉴욕에 사는 우리가 더 잘 알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해서, 그동안 뉴욕을 방문했던 친구들 소식을 신이 나서 들려줬다. 그런데 친구 부인이 내가 한 이야기를 통역하듯이 간간이 그의 귀에 대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내가 영어로 말한 것도 아닌데 이상해서 물어봤다. 나이가 들어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란다. 그래서 전화상으로도 이야기할 수 없었단다. 나는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그는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다. 문득 이 친구가 알아는 들은 건지? 나는 맥이 풀리며 조용해졌다.

조용한 분위기를 반전하려는 듯 
지금도 수임이가 귀엽지만, 예전에도 귀여워서 인기가 좋았는데, 아무개 알아? 
그는 동기인 남편에게 물었다
누구? 
수임이 따라다니던 덩치 큰 복학생? 
헌데, 이 친구가 이젠 눈도 나쁜가? 내일 모래 환갑인 내가 귀엽다니.

우리가 벌써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침침해질 정도로 늙었단 말인가! 몸이 좋지 않아 술도 못 마신단다. 이가 성치 않아 고기도 먹기 어렵. 기억이 희미해져 친구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만나기 전 기대감이 슬금슬금 맥이 풀려나갔다.

시력이 시원치 않아 내 모습이 안갯속의 여인네 모습처럼 보이기라도 하는지? 그야말로 요즘 용어로 뽀샾 기능이 작동자글자글한 주름살을 자세히 볼 수 없어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서글펐다.

술판이 무르익을 초저녁 8, 그는 시계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더니 슬그머니 웃으며 일어났다. 그를 더는 잡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친구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무는 해를 보며 배웅했다. 그리고는 다시 식탁에 앉아 침묵 속에서 술을 마셨다. 이렇듯 시간은 흘러가는가! 술맛이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