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여자 친구다.
인사해라.”
고개 숙여 인사하며 여자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었다.
아버지보다는 스물다섯 살 정도는 어린듯했다. 아버지에게 이미 여자가 있었다니! 엄마가 가신지 6개월도 채 안 됐는데.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이 넷을 키우며 고생하는 여자다. 착하고, 음식 솜씨 좋고, 뜨개질도 잘하고 재주가 많은 아주머니다. 네가 미국에서 나오는 줄 알고 네 스웨터를 벌써 만들어 놨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며 다 말해 만들어 줄 거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며 흥분한 아버지를 생전 처음 봤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이 넷을 키우며 고생하는 여자다. 착하고, 음식 솜씨 좋고, 뜨개질도 잘하고 재주가 많은 아주머니다. 네가 미국에서 나오는 줄 알고 네 스웨터를 벌써 만들어 놨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며 다 말해 만들어 줄 거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며 흥분한 아버지를 생전 처음 봤다.
아버지와 아줌마 그리고 갓 결혼한 우리 부부 넷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속리산을 거쳐 안동을 지나
경주 불국사 그리고 백암온천까지. 돌아가신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도 효도해야 하니
어쩌겠는가.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아줌마는 아버지와 15년 넘게 잘 지내며 내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나에게도 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잠적했다. 아버지가 남산을 오르다 다리를 다쳐 누웠기 때문이다.
누워 있는 아버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듯했다. 그러나 워낙 건강하신
아버지는 곧 완쾌되었다. 아줌마를 잊지 못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그녀의 거처를 수소문했다. 그녀를 알고 있다는 충청도에 있는 한 식당을 아버지와
함께 찾아가서 온종일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인사해라 내 걸프렌드다.”
세련되고 참한 분을 또다시 소개했다. 아버지는 그동안 일본인 아줌마,
미국에서 살다 나간 아줌마도 사귀었다. 아마 내가 모르는 나보다 어린 아줌마도 있었을
것이다. 홀로 계신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즐거운 여생을 보내실 수 있다면 난 누구든 다 좋았다.
몇 년이 흘러, 어느 날 밤중에 누가 문을 두들겨 내다보니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아줌마가 엄청나게 뚱뚱한 모습으로 문 앞에 떡하니 서
있더란다. 아버지는 문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녀를 제지하고 ‘맥도날드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단다. 부리나케 집안에 있는 돈을 다 챙겨 맥도날드로
나가니 아줌마는 ‘잘못했다’고
빌며 ‘다시 돌아오겠다’며 눈물짓더란다.
“한번 떠난 인연은 다시 이어질
수는 없다. 어디에서든 잘 살아라.”
챙겨간 돈을 주니 서럽게 울면서
가더란다. 뉴욕에 있는 나에게도 한밤중에 국제전화로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달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아버지, 왜 아줌마들과 사귀기만 하고 결혼은 안 하세요. 결혼하세요.”
“오십 넘은 여인네들 크고 작은 지병들이 있다. 내가 좀 편하기를 바라고 호적에 올렸다간 되레
그들 병시중 들게 된다. 내 생에 결혼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네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나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