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8, 2009

사람 팔자, 개 팔자

"아가씬 줄 알았는데 아줌마네!”

맨해튼 32가 한 건물에서 막 올라가려는 엘리베이터를 날쌘 몸짓으로 잡아탔다. 뒤따라 타는 서너 명의 젊은 한인 남자들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얼굴을 돌리는 순간 한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고마웠다.

뒤에서 보면 아가씨라는 말을 가끔은 듣는다. 어릴 적부터 친정아버지 잔소리 덕분이다
걸을 때 뒷짐을 집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지 말고, 허리와 목을 곳곳이 세우고 걸어라. 좋은 자세로 걷지 않으면 여자 나이 50이 넘으면 허리가 굽고, 다리가 휘어져 여자로서의 매력을 상실한다."

아침마다 머리를 쳐들고 허리를 죽 펴고 팔을 흔들며 걷는다. 먼 하늘을 보며 열심히 걷는 나에게 
똥 밟지 마” 
남편이 밀친다. 고개를 쳐들고 걸을 수가 없다. 특히 눈 녹는 날에는 심하다. 기분 좋게 시작한 아침 운동이 개똥을 밟고 나면 눈치 봐서 안 치운 개 주인들이 밉다.

오래전 한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패키지여행을 했다. 뒤에 앉은 젊은 여자가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우리 딸 잘 있지? 밥 먹였어? 엄마 보고 싶어 할 텐데? 아이고 우리 딸 보고 싶어라. 쭛쭛쭛” 
전화기에 대고 뽀뽀를 해대며 난리를 떨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딸이라는 게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아이 업는 포대기로 업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루마에 태워 다니기도 하고 그네를 태우는 사람도 있다. ‘우리 아들’, ‘우리 딸이라고 부르는 강아지 주인에게 참다 못한 한 할머니가 
사람이 어쩌다가 개를 낳았소?” 
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도 있다.

옆집 친구가 팔리라는 개를 키운다. 팔리는 겨울에 눈과 코만 내놓고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싸고 멀리서 걷는 나를 어찌 알아보고 반가워서 미친 듯이 펄쩍펄쩍 뛴다. 개는 놓아 키웠던 똥개, 잡아먹는 개 정도로 생각하며 질색하는 남편을 보고도 변함없이 좋아서 달려든다. 이렇게 정이 많은 팔리를 보면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 결혼 안 하니? 어떤 사람 찾는데?” 
결혼 전 노처녀인 나에게 친구들이 물어봤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눈은 높아서 시집도 못 가고 쯧쯧쯧
소리가 듣기 싫어 나의 대답은 항상 명쾌하게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뒤 잘 보는 사람!”
그건 개잖아. 얘는 별소리를 다 한다
친구가 눈을 흘기면 
개만도 못한 사람이 많으니까. 개만 한 사람이면 다행이지 뭐

아침에 조깅하다 보는 변함없이 반가워하는 개들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개똥 밟을까 봐 조심스럽게 머리를 숙이고 걸어서 내 아가씨 같은 몸매를 망가뜨리는 개똥 안 치우는 개 엄마 아빠들은 무척이나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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