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7, 2009

고생이 많으시지요?

며칠 화가의 전시회 오프닝에서 신문에 실린 글을 읽었다는 독자를 만났다

전시회 하는 작가와 글을 읽는 독자는 친구 사이란다
너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 그림을 그리니 얼마나 행복하니. 봐라 글을 이수임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고생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프닝에 오면 이수임을 만날 있어.
해서 왔단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독자는 나를 보자마자 글을 읽고 있다며 
스튜디오 마련하느라 고생을…” 
속으로스튜디오? 갑자기 웬 스튜디오’ 하며 너무 오래전 일이라 빨리 머리 회전이 안 되
, …”
 했.

그분은 다시 
고생이 많으시지요?” 
친정 언니 같은 자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들어야 소리는 고생 많이 하셨지요? 과거형이 아닌가?. 
글 마당에는 옛날 일을 쓴 거예요. 지금은 사는데....”

남편과 사느라 고생을 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좋아졌다. 글쎄 얼마나 사는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의사를 남편으로 시누이보다 낫. 물론 벌지 못하는 의사지만. 시어머니 말씀이 
살다 보니 화가인 우리 아들이 의사인 사위보다 산다
좋아하실 정도다.

부자가 망하면 3년이 간다는데 가난한 사람이 살게 되어 마음의 여유를 갖는 데는 30년은  걸리는 것 같다. 그러니 독자분이 말했던 
고생이 많으시지요.
현재 진행형이 맞는 말이다. 경제적으로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고생할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버리려다가도 생각이 나면 머뭇거리며 소심해지기 때문이다.

오래 힘들게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손님은 다음날 코니아일랜드에 가자고 했다. 크레딧 카드는 물론 없다. 은행에 잔액이 겨우 10달러 정도였다. 손님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밤새 잠을 설쳤다 10불을 이리 쪼개보고 저리 쪼개 봐도 대접할 빵과 달걀 그리고 우유를 사고 나면 코니아일랜드를 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터 같은 머리로 그 10달러를 찾으러 은행에 갔다가 차에 키를 놓고 차 문을 잠갔다. 여분의 키를 가지러 먼 길을 걸어 집에 왔다. 손님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키를 찾아 다시 은행까지 걸어갔던 시절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산다고 말할 없다.

가난은 나를 철들게 했지만, 아직도 물귀신처럼 따라다닌다. 그러나 마음 구석은 훈훈하다. 가난했기에 글을 있고 글을 읽고 위로해주는 독자를 만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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