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26, 2009

편지를 잘 쓰는 여자

미국으로 시집간 이웃집에 살던 인숙 언니는 편지를  썼다.  

어느 날 인숙 언니가 생머리에 가무잡잡한 얼굴로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에 가면 화려하고 멋진 모습으로 변할 줄 알았는 언니의 모습은  얼굴이 햇볕에 탄 것 말고는 오히려 예전보다  소박하고 수수했다.

인숙 언니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미국에 사는 사람과 펜팔을 하다 LA 시집갔다. 어릴 나는 편지를 쓰면 언니처럼 미국에 있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보려고 애를 썼지만 쉽게 써지지 않았다.

내가 글이라고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위문 편지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군인에게 쓰는 편지 숙제가 많았다. 국군 장병에게라고 제목만 놓고는 다음을 이어 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어린 내가 고민을 처음 시작한 것도 아마 위문 편지 숙제 때문이었을 거다.

밖에 나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한숨을 쉬며 고민하고 있었다
조그만 게 한숨은, 뭐가 문젠데” 
인숙 언니가 물었다
국군 위문 편지를 쓰지 못해서.” 
,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
편지 내용을 불러주었다 아저씨로부터 답장이 왔다. 옆집 언니는 답장을 읽고 불러주는 대로 적으라고 했다. 편지 내용은 신경 쓰지 않고 하얀 종이 위를 까만 글씨가 메꾸어져 가는 것만이 신이 났다. 이렇게 편지가 여러 오가다가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겼다.

느 날 휴가를 나온 군인 아저씨가 커다란 크레파스를 들고 우리 학교로 찾아온 것이다. 크레파스를 주며 언니를 찾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아저씨는 편지를 손에 쥐여주며 언니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군인 아저씨가 떠난 나는 
밖으로 내다보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 귀퉁이에 서서 언니에게 전해 줄 편지를 구겼다.

군인 아저씨가 왔다 간 선생님은 나를 쓰는 아이라며 글짓기 대회에 대표로 내보냈. 글짓기 대회에서 군인 아저씨를 속이고, 선생님을 그리고 아이들을 속였다는 반성문을 썼다 이후 반성문 형태의 글을 쓰곤 했다.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을 내가 그때 그랬었나? 하며 깨닫는.

인숙 언니 덕분에 반성문은 쓰게 됐지만 반성문 말고도 창조적인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수 있을까?  쓰는 친구에게 물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나. 친구가 화장실 사이에 친구의 노트를 흘깃 들여다봤다. 길고 멋진 문장이 막힘없이 쓰여있는 게 아닌가
집에 돌아와 나는 친구처럼 길고 멋진 글을 쓰려고 노트를 펼쳤다. 그러나 내가 것은 
나도 친구처럼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쓴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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