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4, 2008

30불짜리 결혼 반지


비자가 끝나가고 있다. 1984년 1월 28일이 되면 미국 체류 비자가 만료된다. 학교는 졸업했다. 직장은 구하지 못했다. 노처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학까지 보낸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민이 많다. 

런드로맷에서 빨래를 하며 미술 잡지 책을 보고 있었다. 한국 사람인 듯한 중년 남자가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사람이세요?”
내가 보던 책을 들여다보며 
“혹시 미술 공부하세요?” 
이런 인연으로 나의 비자 문제가 해결될 줄이야! 알고 보니 대학 선배였다. 
“애인 있어? 장가 못 간 후배가 있는데 어때?” 
주말에 자기 집으로 오란다. 

유학 생활에 찌들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완할 수 있는 옷을 꺼내 이리저리 입어 보지만 마땅한 게 없다. 선배의 아파트를 수줍어서 쭈뼛쭈뼛하며 들어섰다. 
“야! 너 여기에 어떻게 왔어?" 
어디서 본 듯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자세히 봤다. 대학교 4학년 때 이민 간 동기 동창이다. 
“너 아직 시집 못 갔니?” 
“그러는 너는?” 
'나야 남잔데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느긋한 표정이다. 대학 시절엔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말 한마디 해본 적도 없는 사이였는데. 

동기 동창은 영주권도 있고 남자라 느긋하다. 나는 비자가 끝나면 서울에 돌아가야 한다. 혼기를 놓친 딸 때문에 걱정하실 부모를 볼 생각하니 조급했다. 그나마 부모 멀리 살아야 효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 영주권 좀 해 줄래.” 
용기 내어 말했다. 
“너 요즈음 영주권 하는데 돈 많이 줘야 해”
“나 곧 비자가 끝난단 말이야. 얼마면 되는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주 신이 났다. 

급한 내가 차이나타운에 있는 보석상으로 가서 내 반지는 30불 주고, 동기 것은 50불을 주고 샀다. 비자가 끝나기 하루 전날, 택시에 동기를 태우고 친구 서너 명과 함께 시청으로 달렸다. 주례가 1분 45초 만에 뭐라 뭐라 하며 끝냈다. “다시, 다시” 하며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혼인 서약은 끝났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식당 실락기에서 친구들과 빼갈 곁들인 점심을 먹으며 떠들다. 지하철 입구에서 
“이제 됐니?” 
“그래 됐다.” 
그는 자기의 스튜디오로 나는 나의 아파트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L.A. 사시는 동기의 아버지가 한번 만나 보고 싶다며 비행기 표를 보내주셨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결혼식도 해주고, 다이아 반지도 주겠단다
죄송한데요. 다이아 반지는 필요 없고요, 반지 대신 돈으로 주시면  되겠습니까?” 
사색이 되어 
그러는데?” 
돈으로 생활 기반을 잡고 싶습니다.”
   
결혼 생활 31년째, 나는 아직도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다. 남편은 일 년에 한 번씩은 메주콩만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주겠다며 성화다. 그러나  30짜리 몇 금인지도 모르는 반지가 좋다나이가 드니 둘 다 손가락이 굵어져서 반지가 빠지지도 않는다. 가끔은 살찐 남편의 손가락에 묻혀 버린 가느다란 반지를 자르자고 조른다. 
"손가락 다치겠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괜찮아, 이 귀중한 반지를.” 
남편은 흐뭇 표정으로 반지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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