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28, 2024

부풀어진 허리


몹시 흔들리는 크루즈에서 뱃멀미로 난리 치는 와중에 외국인 남편을 둔 나보다 나이 많은 한국분, 린다씨를 만났다. 그동안 여행 중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잘 통하는 부부였다. 내 남편은 한인을 만나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어울리기를 꺼린다. 어쩐 일인지 이번엔 달랐다. 파도가 하도 쳐서 남편의 머리통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오랜 바닷길에 지쳤는지? 남편은 매일 저녁을 같이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크루즈 여행에서 어쩌다 만나는 한국 여자들의 남편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거듭난 여자들이다. 상대의 힘듦에 공감하고 격려하며 ​​​​​웃음으로 넘길 줄 안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스프링이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모든 돌멩이를 스칠 때마다 삐걱거린다.’

유머 감각이 없으면 모든 일에 삐걱거린다는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의 말처럼, 나이 들수록 개그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 


린다 부부와 있으면 있을수록 더 함께하고 싶었다. 그녀를 찾아 배 안에서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의아해할 정도로 린다는 개그에 뛰어난 분이다. 대화 중간중간의 표정과 손놀림은 마치 타고난 연극배우가 아닌가 할 정도다. 내 남편은 점잔 떨다가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 폭소하곤 했다. 그녀는 아는 것도 많고 솔직했다. 누구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냐는 듯 당당했다. 


한인들이 오랜 기간 크루즈를 타면 한식을 먹지 못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민 생활 자리 잡느라 닥치는 대로 끼니를 때우곤 했던 시절이 왕왕 있어서 한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태원에 살다 와서 그런가? 외국인들과도 거리낌도 없고 한식을 찾지 않네.”

남편은 내가 이태원에서 온 여자라서 그런다지만, 글쎄 아마 난 퓨전 인간인 것 같다.


신기하게 평생을 미국인과 산 린다는 한식을 찾았다. 랍스터, 스시, 사시미 등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는데도 야채로 김치 비슷하게 만들어 먹었다. 크루즈 뷔페에는 온갖 양념이 다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달라면 준다. 그녀가 얼버무려 만든 음식은 꾀나 맛있다. 

“아예 린다가 우리 케빈에 식당을 차렸다니까.”

린다 남편이 옆에서 한식 비슷하게 만드는 린다를 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도 된장찌개 안에 든 감자, 호박, 두부를 건져 먹는 것을 좋아한단다. 오히려 외국인과 사는 한인들이 나이 들수록 고국을 그리워하며 더욱더 한식을 찾는 듯하다. 내가 고생 할 때 먹은 감자가 제일 맛있어서 뷔페에서 끼니때마다 감자를 먹듯이.


나는 가늘던 허리가 부풀어서 크루즈에서 내렸다. 과연 내 허리가 크루즈 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크루즈를 즐기지만, 뱃살 늘어나는 것 때문에 타기가 머뭇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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