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4, 2024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 일 끝내고 올 때까지 왜 밥도 안치지 않고 있었어? 작업한다고 뒹굴기만 했잖아. 룸메이트도 마찬가지야. 두 남자가 조그만 여자가 일하고 차이나타운에서 장 봐 와서 밥상 차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때 난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매일 밥상 차려다 바쳤어. 거의 40년 전 일이지만, 지금 와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기억나? 나에게 너무들 하지 않았어?”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남편이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고 
“기억나지. 너무하기도 했고. 마누라가 그 힘든 상황을 잘 견뎠으니까 여기까지 왔지.” 

“낑낑거리며 장 봐서 온 것도 받아주지 않고. 둘이 나를 멀뚱히 배고픈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잖아. 왜 내가 밥하고 음식하고 밥상 차리기만을 무작정 기다렸냐고. 상을 받아 든 너희들이 뭐랬는지 알아? ‘시골밥상 같다.’는 거야. 서울 한복판 남산동 출생인 내가 친정에서 밥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음식을 만들 줄 알겠어. 왜 거들어 주지도 않고 불평만 했냐고. 무를 채 쓸어 미리 소금에 절이는지도 몰랐어. 무생채를 만들었더니 생무를 씹는다는 둥. 오징어 눈알을 빼고 껍질 벗기고 삶아야 하는데 그냥 삶았더니 눈알이 터진 먹물에서 오징어를 낚시해야 하냐는 둥.”  

“난 친정에서 자기 전에 간식을 항상 먹었어. 그런데 먹을 간식도 없었지만, 한밤중에 뭐라도 먹으려고 해도 룸메이트 깰까 봐, 배가 고파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그때 천정에서 떨어지는 쥐벼룩에게 물린 곳을 긁는 게 더 급해서 힘든지도 몰랐나 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단 한 시간도 살지 못할 거야. 두 남자도 문제였지만, 내가 어리석었지. 그 찌질한 삶을 겁도 없이 선택한 내 탓이지. 그래서 나는 나만을 위해서 살고 싶은 거야. 더는 누구를 위한 삶은 살지 않는다고~”

“고생한 마누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다 서포트 해줄게. 서울 가서 얼굴 보수공사하고 늘어진 팔뚝 살 잘라내고 푹 쉬었다가 올래?”
“그 먼 데를 어떻게 가. 비행기 타는 것이 제일 고역이야. 가까운 유럽에 가서 한 달 있다가 올래.”
“그건 위험해서 안 돼. 예전에 터키에 갔다가 얻어터지고 왔던 것 생각 안 나?”
“얻어터지고 객사하는 것으로 예전 억울한 기억을 없애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와!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신문에 쓰지 않았지? 신문에 써도 되지?”

“되고말고 마누라면 편해진다면 쓰고 싶은 거 다 써. 하지만 유럽에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해. 서울에나 갔다 와. 처진 얼굴 고치고 피부 갈아내고 나면 거울 들여다보느라 옛 기억 싹 없어질 거야.”
“아니, 근데 왜 나보고 얼굴 확 갈아엎으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거야? 내 얼굴 보기가 그렇게도 역겨워?”
“그런 게 아니라 요즈음 다들 한다니까. 아직도 대학 시절 그 귀엽던 모습이 슬쩍슬쩍 보여서 나는 상관없지만, 마누라가 원하면 하라는 거야.”
“며칠 전, 나이 어린 친구들 만날 때 ‘나 얼굴 확 뜯어고칠까? 말까?’ 물었더니 3명 다 말리는 거야. 자기들 엄마가 귀대기 있는 곳을 잘라내고 실로 묶어 올렸는데 너무 아파서 혼났다네. 지금 다시 흘러내리는데 아픈 것 생각하면 두 번 다시 못 하겠다고 했데. 나보고 제발 얼굴 건드리지 말고 그냥 살라는 거야. 그냥 처진 얼굴로 유럽이나 한 달 혼자 갔다 올게. 말리지 마.” 

하도 열받쳐서 대낮부터 와인을 들이키고 창밖을 내다봤다. 비 오고 난 뒤 채 마르지도 않은 벚꽃이 빗물을 털며 나를 향해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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