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던 어느 날 어퍼웨스트사이드 115가에서 ‘뉴욕한인교회’ 간판을 봤다. 보수 공사 중이다. 근처에 한인 교회가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교회에 관해 구글링했다. 남편은 이 교회가 내로라는 애국지사들의 뉴욕 아지트였다는 히스토리에 초점을 두었다. 나는 1921년에 세워진 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 한인이 들락거리며 위로와 도움을 받았을까? 따뜻함으로 교회를 바라봤다.
40여 년 전 내가 한인이 없는 롱아일랜드에 유학 와서 외로울 때마다 찾아갔던 곳이 미국 교회였다. 어느 날 뒷좌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기도하는 나에게 맥도날드 부부가 손을 내밀며 반겼다. 아마 그들의 위로와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한 학기 마치고 서울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과 ‘뉴욕한인교회’를 오버랩하며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M이 미국으로 간 후 소식이 끊겼다. 나도 M이 떠난 후 뉴욕에 왔다. M을 찾고 싶어 한국 방문 중 그녀가 다녔던 서대문 교회를 찾아가 연락처를 받았다. 34년 전, 콜롬비아 대학 근처에 있는 한인교회를 찾아가 M을 만난 적이 있다. 몇 번 만나다가 연락이 끊겼다. 그녀는 이미 자리를 잡았고 나는 화가 남편을 만나 고생하느라 밥값 낼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 당시 M의 배려가 고마움보다 미안함으로 다가와 내가 연락하지 않았다. 내 형편이 나아진 후, M이 그 당시 어려운 내 사정을 알고 대신 내준 동창회비도 갚고 함께 따뜻한 식사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3년 전 나는 M을 찾는 글을 신문에 쓴 적이 있다.
마침, 이 교회에 다니는 친구 H가 교회 공사가 끝나고 예배를 드린다며 주일에 교회로 오라고 했다. 만날 날을 기다리는 중, M을 만난 곳도 콜롬비아 대학 근처 교회였다는 것이 생각났다. 34년 전, M을 빨리 만나고 싶어 뛰다시피 걸어가던 어둡고 긴 복도, 통로 끝에서 M을 똑 닮은 7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봤다. 그 아이를 붙잡고 네 엄마 이름이 뭐냐고 물었던 그 당시 M이 다녔던 커다란 교회와 아담한 ‘뉴욕한인교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뉴욕한인교회’에서 H를 만나자마자
“혹시 이 근처에 다른 한인 교회 있어?”
“아니 다른 한인교회는 없고 오래전 고등학교를 빌려서 예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오래 다닌 분에게 물어보자.”
소개받은 분과 몇 마디 나누자 M을 금방 기억해 내셨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성경 구절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3년 동안 찾아 헤맨 친구의 연락처를 찾아서 알려주신 친절한 LSH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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