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어디로 갈까?”
“우드스톡으로 가자.”
북동쪽으로 여행 갈 적마다 뉴욕시티로 들어오기 전, 서너 번 들렸던 우드스톡을 가자고 했다. 친구는 오래전, 록 음악 페스티벌로 히피들의 낭만적 놀이터였던 Woodstock이 가 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했다. 그녀가 너무 기대하다가 실망할까 봐 한마디 곁들였다.
“10여 년 전, 그곳에 들렸을 때 왠지 동네가 낙후되는 음습한 분위기였어.”
우리는 우드스톡에 도착해서 일단 차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여기로 오길 잘했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 보다 더 좋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남편과 들렸을 때보다 활기차다. 아기자기한 가게를 들여다보며 걷다가 일본 모자 가게에 들어갔다.
“예쁜 모자가 많네.”
친구가 흥분하며 이것저것을 쓰고 거울을 봤다.
“우리 물건 사지 않기로 했잖아. 이젠 슬슬 정리할 때라며 죄다 솎아내어 버리면서.”
“이 모자는 살 거야. 말리지 마. 딱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 저것도 마음에 드네.”
또 다른 모자를 써보는 친구에게
“그럼 하나만 사. 그 모자는 커. 이것이 더 예뻐.”
“아니야. 이 모자도 예뻐.”
더는 말릴 수 없었다. 다른 모자를 둘러보는 척하며 나는 친구에게서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두 개를 샀을 친구가 한 개만 사서 쓰고 나를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아래로 다소곳이 내려간 모자챙 속에서 갓 피어난 수줍은 노란 꽃이 고개를 내미는 것 같다.
“멋져. 옷과도 잘 어울려. 잘 샀어.”
나는 70년대 낭만의 시대에 대학 시절을 보냈다. 말이 좋아 낭만의 시대지 실은 4년간 가을 학기는 데모와 최루탄 속에서 개점 휴업. 장발과 미니스커트 등 혼란의 범벅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틀에 박히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개성을 추구하는 히피 문화를 엇비슷 따라 했다. 그 당시엔 명품은 저 꼭대기에 있는 상류층에서만 존재했는지 명품이라는 말이 생소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시간과 인간에 쫓기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비록 명품 가방이나 옷은 없지만, 명품 친구를 얻었다.
황갈색 모자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 친구는 그야말로 인간 명품이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세련미가 뿜어져 나온다. 아마 그녀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그녀를 자연스럽게 명품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명품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자랑스러워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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