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들은 너희가 챙겨라.
엄마는 이제 나이 들고 힘들어 쉬어야 해.”
아이들이 어릴 적엔 매년 연말에 LA 시댁에 갔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반대로 LA 조카들이 뉴욕을 수시로 방문한다.
젊은이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브루클린 강변이라 아이들이
해외로 떠돌다가도 돌아와 살고 싶어 하고 조카들까지 몰려오니 가뜩이나 비실비실한 내가 떠나는 수밖에. 브루클린 집을 떠나 맨해튼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함께 살면 끼니 걱정에 시시콜콜한 잔소리 타령이 다 큰 놈들에게 좋을 리 없을 것 같아 힘든 결정을 했다.
좁은 아파트에서 6명 (87, 88, 89, 90, 91, 93년생)이 뒹굴며 자고 놀며 지내다 때가 되면 조카들은 방을 얻어 나가 독립했다.
함께 여행도 가고 주말에는 맥주 마시며 잘 어울린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매년 연말이면
흩어져 있는 손주들을 불러모아 시끌벅적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를 즐기셨던 시아버지의 바램이 이루어진 셈이다. 지금은 저 하늘나라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계실는지!
가끔 밥 한 끼 해주는 것으로 땡인 내가 지난번 아이들 6명과 센트럴파크에서 피크닉을 했다. 자리 깔고 먹고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다 그중 하나가 할아버지가 만든 브렉퍼스트가 먹고 싶다고 하자 모두가 수긍하며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실타래 풀듯 쭉 늘어놓았다.
이른 아침 일어나시자마자 커피를 끓이고 시나몬 번을
만드시던 할아버지. 커피와 시나몬 향이 가득한
부엌에서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바삐 움직이시던 할아버지가 왜 그립지 않겠는가! 추수감사절엔 듬직한 터키를 여러 마리 구워 사돈댁에
돌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요리사 모자를 쓴 손주들과 함께 쿠키 하우스를 만들던 자상한 할아버지를 어찌 잊겠는가.
할아버지를 닮아 아이들 모두가 음식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제법 잘 만든다. 특히나
10여 년 만에 LA에서 온 93년생 막내는
육 척 장신의 헌헌장부가 되어 입안에서 살살 녹는 피치 코불러 (peach cobbler)을 피크닉에 구워왔다.
다들 잠든 이른 아침에 혼자 베이컨과 해시부라운을 준비해 아침상을 차려놓는다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듯하다.
남편도 시아버지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전은 가끔 건너뛰면서 흘러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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