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살 것만 사서 빨리 나와.”
차에 앉아 신문 보며 재촉할 줄 알았던 예상을
뒤엎고 남편은 카트를 끌고 앞장섰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다 방향을 달리해 세일 품목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남편은 채소 부로 직행했다가는 생선 부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남편은 70년대 이민 초기 단 며칠간 채소 가게에서 일 한 기억을 살려 고무밴드로 묶어
놓은 파의 흰 부분을 쥐어서 굵은 단을 고르고, 배춧속을 눌러보고, 수박을 두들기며 싱싱하고 맛 좋은 것을 고르느라 애쓴다. 결국, 수박을 옮기다 박살 내는 바람에 쫓겨난 실력이지만. 생선 고르는 남편의 모습은 신중하다 못해 심각하다. 생선의 눈 그리고 때깔도 보지만 손으로 눌러보고 제쳐보고 골라 놓고는 만족한 듯 비린내 나는 손을 미꾸라지 꾸물대는 물통에다 헹군다.
함경도가 고향인 시집식구들의 생선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시어머니는 장 볼 때마다 가자미를 사다 신문지를 깔고 구부리고 앉아
한나절은 다듬는다. 소금에 절여 식혜도 만들고 작은 텐트처럼 생긴 망에 넣어 생선이 꾸둑꾸둑할 때까지 말린다.
식탁에서 시집식구들은 생선 먹는 소리 이외는 아무 대화가 없다. 생선 눈알, 껍질, 생선살 한점도 남기지 않을뿐더러 생선 머리 또한 형체도 없이 해치운다. ‘동물의
왕국’을 연상하면 된다. 사자에게 잡힌 얼룩말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해체되듯 나는 젓가락만 든 하이네가 되어 남편 눈치만 볼뿐이다. 가끔은 몰두해 먹다가
미안한지 커다란 살점을 떼어 줄 때도 있다.
정육점 선반을 기웃거리는 내가 못마땅한지 고기를 싫어하는
남편 이마에 팔자 주름이 선명해지며 나를 삐딱한 눈으로 쳐다본다.
“세일도 안 하는 고기를 왜 집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옆에서 갈비 한 팩을 들던
어느 중년 여자 남편의 외침이었다. 주위에서 장 보던 아낙들이 놀라 돌아다보며 소리죽여 킥킥거렸다.
들었던 갈비 팩을 슬그머니 내려놓는 여자와 왠지 난 같은 배를 타고 향해 하는 동료의식에 씁쓸했다.
“좋지도 않은 라면을 왜?”
인상 쓰며 째려보는 남편의 눈길을 피했다.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남편의 저녁 외출 때, 밥할
걱정 없이 라면을 끓여 냄비째 놓고 TV 보며 한가로이 먹고 싶어선데. 라면의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식도를 내려갈 때 한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함께 쓸려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기 위함인데.
남편이 다른 곳에 신경 쓸 때, 라면 한 팩을 슬쩍 카트 깊숙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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