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되는 것일까? 꼭 가야 할까? 가는 것이 낫겠지.'
대학 졸업 후 자주 만나던 세 명의 친구 중 둘은 이미 결혼했다. 하나 남은 친구마저 결혼할 사람을 만나느라 바빴다. 친구들의 시간은 바삐 화기애애한 소리를 내고 흘렀지만,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남아 어느 층의 버튼을 눌러야 할지 망설이는 듯, 정지된 시간 속에서 헤맸다.
누군가 가지 말라고 잡았다면 굳이 오라는 사람 없는 뉴욕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하나 남은 친구의 결혼식이 끝난 어느 화창한 늦여름 날, 나는 청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김포공항까지 가는 내내 울던 울음은 비행기를 타고서도 그칠 줄 몰랐다.
차만 타면 멀미하는, 처음 타는 비행기는 차보다 멀미가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울음을 뚝 멈췄다. 스튜어디스에게 멀미약을 달라고 하려니 노스웨스트 비행기를 탄 나는 ‘멀미’가 영어로 뭐지?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로 멀미가 오는 듯했다.
한영사전을 뒤져보니 ‘feel vomit’. 스튜어디스에게 사전에서 찾은 대로 말했지만,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사전의 영어 구절에 줄을 춰 줘서 간신히 약 한 알을 받았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water’ 하니 알아듣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orange juice’ 했다. 그러나 물도 오렌지 주스도 얻어 마시지 못했다. 또다시 사전에 줄을 그어 보여주기도 민망해서 멀미가 오기 전에 무작정 약을 입에 넣었다.
한잠 자고 나면 도착하겠지. 잠을 청하려는데 물이 없어 입안에서 씹어 먹은 약의 효능이 엉뚱하게 밀려올 줄이야! 혀가 마비되는 듯 감각이 없어지다 식도 주위까지 얼얼해져 왔다.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스튜어디스를 또다시 불러 그 긴 사연을 영어로 말할 수도 없고. 약 기운에 늘어질 대로 늘어져 마치 살기를 포기한 듯 눈을 감고 비몽사몽 간을 헤맸다.
부드러운 손이 나의 어깨를 두드려 눈을 떴다.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일등칸으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선 힘든 영어를 하지 않아도 신발도, 눈 가리게도 주스도 계속 가져다주며 편히 쉬란다. 가져다주는 대로 먹고 마시고 누워 시간이 지나니 마비되어 얼얼했던 입안의 감각이 되돌아오는 듯 정신이 들었다.
비행기가 시에틀에 도착했다. 일어나 내리려는데 잠깐 앉아 기다리란다. 스튜어디스는 나를 입국 수속 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시에틀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뉴욕 가는 비행기에 실어줬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나를 의자에 앉혀 놓고 내 두 손을 꼭 잡고 기도 하는 게 아닌가. 영어로 하는 기도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멘’하는 소리는 알아듣고 나도 ‘아멘’ 했다.
헤어지기 전,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며 걱정하는 스튜어디스의 파란 눈엔 물기가 어른거렸다. 당황하는 나를 꼭 안아주며 “Good
Luck.”하고는 가라며 손짓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알아들은 영어는 천사 같은 스튜어디스의 ‘Good Luck’ 이였다. 미국에 살며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고 빌어준 ‘Good Luck’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한 해를 보내며 모두에게 감사하며 그들에게 ‘Good Luck’를 보낸다.
한 해를 보내며 모두에게 감사하며 그들에게 ‘Good Luck’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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