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미국 가서 골프도 안 쳤니?”
서울 가서 친구에게 연락하니 골프를 치자고 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며 무조건 골프장으로 끌고 갔다.
“그 넓은 미국에서 골프도 안 치고 이 좁은 한국에서도 다들 치는데…”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골프장 언덕 위에 남겨놓고 친구는 골프를 치러갔다.
대학 시절, 나는 이 친구를 자주 만났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처지가 같아서였던 것 같다. 어느 겨울이었던가, 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무작정 가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리자고 했다. 커다란 호수가 있고 멀리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지붕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노을이 물드는 하늘로 올라갔다. 호수의 수면은 꽁꽁 얼어붙었다. 미끄러지면 잡아주고, 밀고, 당기며 빙판 위를
걸어 건넛마을로 갔다. 우리들의 웃는 소리도 빙판 위를 미끄러져 멀리 갔다가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중간지점에서 얼음이 쪼개지는 소리에 겁을 먹고 멈추었다. 멀리 보이는 갈 수 없는 마을을 아쉬운 듯 바라보며 지금처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오래 기다렸지. 네가 기다릴 것 같아 오늘은 일찍 끝냈어.”
친구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거기가 어딘지 아니?”
“어디?”
“겨울에 우리 둘이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려고 했던 곳.”
“호수? 아~! 거기. 거기가 어디더라? 우리가 그냥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내린 곳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너 생각나니? 대학교 때, 친구들과 산장에 갔던 것. 그 날밤 너와 내가 잠이 오지 않아 밖에 나와 별을 보며 떨던 것 기억해?"
“언제?”
"눈이 쌓여 신발이 젖을까 봐 우리가 좋아했던 남자애들 커다란 군화를 몰래 하나씩 신고 질질 끌며 하얀 숲 속을 걸었던 것.”
“아~. 그거.”
“그때 거기가 어디였어?”
“몰라. 군화이야기 하니까 생각은 나는데 기억 안 나.”
내가 신은 군화의 주인공을 만나기로 한 날, 하필이면 수영시험을 봐야 하는 체육 시간과 겹칠 줄이야. 나를 기다렸을까? 그 남자는 분명히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는데.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헤어진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 남자들은 지금 무얼 할까?”
“나처럼 골프나 치고 있겠지. 넌 왜? 쓸데없이 옛일을 죄다 떠올리며 난리니? 기억해서 뭐하려고?”
“난 그냥 네가 날 그때 그곳으로 데려가 줬으면 해서.”
“언제 일인데. 다 잊고 골프나 배워. 골프가 건강에 얼마나 좋다고. 세상에서 골프처럼 재미있는 것은 없다. 너 그리고 상류층과 교류하려면 골프도 칠 줄 알아야 해. 미국에 돌아가면 골프 꼭 배워. 다음엔 함께 치게.”
그 시절로부터 우리가 너무 멀리 와 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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