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3, 2011

동전 이야기

요즈음은 집안에 동전이 많이 굴러다니나 보지. 목소리가 밝은 .” 서울에 사는 친구가 전화로 물어본 소리다
옛날 일이지. 그렇지만 버릇 주나. 아직도 남의 집에 가서 유리병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동전을 보면 집은 그런대로 만한가 보네. 하며 마음이 편해지거든.”

이곳 미국 생활에서는 집안에 돈이 마르기 시작하면 사막에서 입안이 타들어 가듯 땡전 한 푼 구경하기 어렵다. 부자지간에도 이야기는 한다는 미국, 어디 떨어진 동전이라도 없나 해서 옷장 속의 주머니를 뒤지며 산다는 내 옛날이야기를 친구는 마음에 새겼는지 목소리의 톤에 따라 동전 이야기로 안부를 묻곤 한다.

 젊은 시절 파리에 정착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피카소도 신발이 없어서 애인이 돌아와야만 외출할 수 있었다는데 남편의 외출을 위해 동전 찾기쯤이야. ‘제발 종이돈나와라. 뚝딱.’ 주문을 외우며 옷장 속의 주머니를 죄다 뒤지지만, 종이돈은 고사하고 땡전도 없었다. 그러니 웬만한 곳은 걷기가 일쑤였다. 있는 동전을 낡은 외투에 넣고 흔들며 혹시 길가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찾는지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그리 안돼 보였는지.

살면서 뭉치 돈복은 없어도 남편의 공중전화와 얽힌 동전 복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 가망이 없자 근처 한산한 거리에 덩그러니 있는 전화통에 동전을 넣는 순간 불어치의 25전짜리가 철커덩 철커덩 흘러나온 . 또 다른 한 번은 직장 옆에 있는 선술집의 공중전화에서 잭팟이 터지듯 동전이 쏟아졌다. 남편은 놀라서 동전 구멍에다 가슴을 대고는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며 10불가량 되는 동전을 윗옷으로 쓸어 모았다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동전 벼락이 있었다. 렌트비를 아끼려고 수리해 쓰겠다는 조건으로 스튜디오 얻었다. 스튜디오 한쪽 귀퉁이 낡은 찬장 속에 누런 스파게티 상자를 치우니 후추통 개가 숨은  나왔. 약간의 섬뜩함을 동반한 묵직함에 열어보니 4~50년대의 은전이 그득했다. 지금도 후추통을 무슨 보물단지 인양 쳐다보면 몽땅 꺼내 말까 절박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에게 동전 이야기로 안부를 묻는 친구는 부모의 반대로 미술대학에 가는 대신 의사가 되어 의사인 남편을 만나 강남에서 산다. 버는 의사 부부의 삶은 과연 어떨까? 얼마나 행복할까? 너무나 궁금해 작심하고 물었다. 
살면 얼마나, 어떻게 사는 건데?” 
글쎄, 돈이 모이자 처음에는 명품, 그것도 시들해지자 외국여행과 골프를 짓도 흥미를 잃자 음악회에 들락거렸어. 그러다 요즈음은 그림 수집하는 단계까지 왔다고나 할까? 그런데 남편 그림값이 아주 비싸더라. 옛날에 사둘걸. 후회된다.”

훗날 프랑스 문화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젊은 작가들과 함께 아지트였던 몽마르트르 언덕의 세탁선을 둘러보면서 역사 기념물로 지정한다고 하자 옆에 있던 피카소가 진작 어려울 도와주지.’ 하며 중얼 됐다든가.

갑자기 무의식중에 내 콧대가 올라가며 소리로 진작 사지. Too 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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