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집안에 동전이 많이 굴러다니나 보지. 목소리가 밝은 게.” 서울에 사는 친구가 전화로 물어본 소리다.
“다 옛날 일이지. 그렇지만 개 버릇 남 주나. 아직도 남의 집에 가서 유리병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동전을 보면 이 집은 그런대로 살 만한가 보네. 하며 마음이 편해지거든.”
이곳 미국 생활에서는 집안에 돈이 마르기 시작하면 사막에서 입안이 타들어 가듯 땡전 한 푼 구경하기 어렵다. 부자지간에도 돈 이야기는 안 한다는 미국, 어디 떨어진 동전이라도 없나 해서 옷장 속의 주머니를 뒤지며 산다는 내 옛날이야기를 친구는 마음에 새겼는지 내 목소리의 톤에 따라 동전 이야기로 안부를 묻곤 한다.
젊은 시절 파리에
정착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피카소도 신발이 없어서 애인이 돌아와야만 외출할 수 있었다는데 남편의 외출을 위해 동전 찾기쯤이야. ‘제발 종이돈이 나와라. 뚝딱.’ 주문을 외우며 옷장 속의 주머니를 죄다 뒤지지만,
종이돈은 고사하고 땡전도 없었다. 그러니 웬만한 곳은 걷기가 일쑤였다. 몇 개 있는 동전을 낡은 외투에 넣고 흔들며 혹시 길가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찾는지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왜 그리 안돼 보였는지.
살면서 뭉치 돈복은 없어도 남편의 공중전화와 얽힌 동전 복은 몇 번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 가망이 없자 근처 한산한 거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전화통에 동전을 넣는 순간 몇 불어치의 25전짜리가 철커덩 철커덩 흘러나온 일. 또 다른 한 번은 직장 옆에 있는 선술집의 공중전화에서 잭팟이 터지듯 동전이 쏟아졌다. 남편은 놀라서 동전 구멍에다 가슴을 대고는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며 10불가량 되는 동전을 윗옷으로
쓸어 모았다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동전 벼락이 또 있었다. 렌트비를 아끼려고 수리해 쓰겠다는 조건으로 스튜디오를 얻었다. 스튜디오 한쪽 귀퉁이 낡은 찬장 속에 누런 스파게티 상자를 치우니 후추통 두 개가 숨은 듯 나왔다. 약간의 섬뜩함을 동반한 묵직함에 열어보니 4~50년대의 은전이 그득했다. 지금도 그 후추통을 무슨 보물단지 인양 쳐다보면 몽땅 꺼내 쓸까 말까 한 절박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에게 동전 이야기로 안부를 묻는 친구는 부모의 반대로 미술대학에 가는 대신 의사가 되어 의사인 남편을 만나 강남에서 잘 산다. 돈 잘 버는 의사 부부의
삶은 과연 어떨까? 얼마나 행복할까? 너무나 궁금해 작심하고 물었다.
“잘 살면 얼마나, 어떻게 잘 사는 건데?”
“글쎄, 돈이 모이자 처음에는 명품, 그것도 시들해지자 외국여행과 골프를 그 짓도 흥미를 잃자 음악회에 들락거렸어. 그러다 요즈음은 그림 수집하는 단계까지 왔다고나 할까? 그런데 네 남편 그림값이 아주 비싸더라. 옛날에 쌀 때 사둘걸. 후회된다.”
훗날 프랑스 문화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젊은 작가들과 함께 아지트였던 몽마르트르 언덕의 ‘세탁선’을 둘러보면서 역사 기념물로 지정한다고 하자 옆에 있던 피카소가 ‘진작 어려울 때 좀 도와주지.’ 하며 중얼 됐다든가.
갑자기 무의식중에 내 콧대가 올라가며 큰 소리로 “진작 사지. Too 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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