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을 걸었다. 지친 다리를 쉴 만한 곳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저 멀리 초록색 종이 뭉치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돈뭉치가 아닐까 하는 희망에 마음이 바빠졌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뒤를 바짝 따라오는 한 사람이 신경 쓰였다. 이 사람이 돈을 줍기 전에 내가 먼저 움켜 줘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드디어 돈뭉치를 내 손에 움켜쥐었고 양쪽 호주머니에 마구 찔러 넣었다. 흘끔 뒤돌아보니 바짝 뒤따라오던 사람은 떨어진 돈뭉치를 보지 못했는지 아쉬운 표정이 없다. 나는 주머니에 두둑한 돈의 촉감을 만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며 천천히 걸었다.
드디어 돈뭉치를 내 손에 움켜쥐었고 양쪽 호주머니에 마구 찔러 넣었다. 흘끔 뒤돌아보니 바짝 뒤따라오던 사람은 떨어진 돈뭉치를 보지 못했는지 아쉬운 표정이 없다. 나는 주머니에 두둑한 돈의 촉감을 만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며 천천히 걸었다.
“치잌 꽝” 새벽 공기를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근처 바디샆 찌꺼기를 수거 해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 달러 뭉치의 진한 초록색이 어찌나 선명하던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더라도 골치 아픈 편지가 없기’를 바라며 매일 나는 편지함을 연다. 심각한 얼굴로 편지를 살피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버릴 편지는 재빨리 버리고 내야 할 빌을 처리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평화로웠던 어제와 같은 오늘’ ‘이대로’만을 유지해주는 하루하루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때는 편지함에 쌓인 빌 때문에 빌빌 데며 어디론가 먼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해남으로 갈까? 누군가 해남이 땅끝마을이라던데, '땅끝까지 빌을 받으러 쫓아오지는 않겠지.' 하는 우스개 생각에서. 아니면 통일교를 믿어볼까? 통일교를 믿으면 기초생활은 보장해준다던데. 안정돼가는 지금도 이민 초기의 초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민자의 숙명인가 보다.
오늘은 또 무엇이 나를 노리고 있을까 긴장하며 편지함을 열었다. 주황색 종이 한 장이 눈에 띈다. ‘영화 촬영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있으면 연락 바람.’ 뭔가 심상치 않은 돈 냄새에 휴지통에 꾸겨 버렸던 종이를 다시 주워들었다.
어젯밤 꿈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닌가? 연락했다. 근처에 있었는지 금방 왔다. 스튜디오 실내를 연방 사진기로 눌러대더니 매니저와 상의하고 연락해주겠단다. 매니저와 실내 디자이너가 곧바로 왔다. 실내를 약간 바꾸어야 하므로 준비하는데 하루, 찍느라 하루, 원위치로 돌려놓느라 하루, 모두 3일이 걸린단다. 스튜디오 사용료를 제시하는데 생각보다 액수가 많아 눈을 어디에 고정해야 할지 당황하며 쿨 한 척하느라 애매한 천장만 쳐다봤다.
계약만 맺으면 간단하게 거금이 손에 쥐어진다. 신이 나서 일단 늘 마셔대는 와인 한 박스를 드려놨다. 와인 한잔하며 생각지도 않았던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오면 어디에 쓸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본다
우선 친구가 말한 가격이 좋고 서비스 좋다는 피부관리를 하러 갈 것이다. 돌보지 않아 생긴 기미와 주근깨를 없애고 처진 눈을 올려볼까? 오랫동안 티브이 없이 살았는데 이 기회에 납작한 티브이를 하나 장만하자. 그리고는 방콕에 가 있는 작은놈을 찾아갔다가 땅끝마을에 한번 들려봐! 머릿속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돈으로 무얼 할지를 연구하느라 분주했다.
계약하고 거머쥔 수표를 은행에 입금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고머니나’ 그 돈 액수만큼 들어갈 일이 두꺼비처럼 턱 하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래서들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기면 늘 써야 할 구석이 따라온다고들 하나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뭉게구름이 유난히도 뭉개고 있었다. 저 잡히지 않는 뭉게구름을 잡으려 애쓰는 동안 거센 파도가 밀려와 와인 한 박스만 남겨놓고 나의 희망을 몽땅 휩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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