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가 남편은 나에게 속삭인다.
“전주이씨
나왔다.”
TV 보다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너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 보성군 파 18대손이다.”
아버지는 1년에 여섯 번 조상 제사 때마다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구의 후손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살면서 나처럼 쌍꺼풀이 없이 처진 눈을
가진 작은 체구의 사람들을 보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면 영락없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 후손이라는 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대부분의 전주 이씨 효령대군의 자손들은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 쌍꺼풀 없이 처진 눈이
특징이다.
유학 시절, 나는 롱아일랜드 가든 시티에 살았다. 길가 꽃밭에 한 작은 동양 할머니가 꽃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가까이 가서
“안녕하세요.”
했다. 한국말 소리에 반가워 쳐다보시는데, 영락없이 나와 비슷한 눈 모습이었다.
“저 혹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같은 종씨라며 반가워했다. 같은 종손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분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아 한국 음식을 얻어먹으며 향수를 달랬다.
친구가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해서 브루클린에 있는 여호와증인 본부인 워치 타워에 간 적이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분을 보니 영락없는 전주이씨다.
“혹시, 저…”
"맞아요!"
어찌나 반가워하시던지.
이렇게 외모만 보고도 성을 알아맞힐 수 있는 후손들이 전주 이씨 효령대군 자손들이다. 물론 쌍꺼풀도 키 큰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아마 대대로 내려오다 전주이씨보다 더 강한 우성에 밀린듯하다.
성형수술이 빈번한 요즈음은 전주 이씨 찾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젊은이들은 종친이라도 반가워하지도 않거니와 관심도 없다. 그래서 종손인듯한 모습을 한 사람을 만나면 성씨만 확인하고는 ‘역시’ 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전주이씨 효령대군 종친회 모임이 있다는 신문에 난 기사를 종종 보기만 하다 용기 내어 전화했다. 전화 받는 분이
"종친회에 여자들도 나오고 노래방에 가서 친목을 다져요."
꼭 참석하라며 친절하게
말하다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그림 그리는 데요.”
“화가요?”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정기모임이 있으면 연락해줄께요."
전화를 부리나케 끊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직업이 화가라는 게 찜찜했는지. 돈 없는 화가가 혹시나 종친회 도움을 받고자 전화한 것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는지? 난 다만 내가 관찰한 전주 이씨 효령대군 후손들의 모습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인데.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