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8, 2010

남자는 하나, 여자는 둘

왼쪽으로 누었다. 자고 나면 왼쪽 어깨가 쑤실까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오른쪽으로 자고 나면 왼쪽 엉치뼈가 아프다는 생각에 엎드렸다. 베개에 눌려 찌그러진 얼굴에 주름살이 생길 걱정에 다시 똑바로 누웠다. 잠이 달아났다.

화장실에 들러  마시고 누웠다. 남편의 고는 소리에 잠을 수가 없다. 남편의 머리를 쪽으로 돌리고 이불을 얼굴에 덮어씌웠다. 시계 소리가 '째깍째깍'. 째깍거리는 소리가 명동거리를 울리는 '똑똑’ 하이힐 소리로 들렸다. 물속에 잠기듯 생각에 빠졌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서였다
나 오늘 그와  헤어졌어."
라는 전화를 친구에게서 받았다. 데이트 약속이 있어 나갈 준비를 하던 나는 친구가 안 됐다는 생각에 함께 가자고 했다.

세련되고 활달한 친구는 금방 내 남자 친구와 친해졌다. 셋은 즐겁게 저녁을 먹고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명동에 있는 호텔 나이트클럽에 갔다. 술이 들어가자 친구가 헤어진 남자를 생각하며 울었다. 친구의 기분도 전환할 겸 함께 춤을 췄다. 그러나 블루스 타임에 남자는 하나인데 여자는 둘, 내 남자 친구는 그녀와 나하고 번갈아 추느라 바빴다.

춤을 추러 나간 둘은 내 차례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가 된 나는 테이블보를 손가락으로 긁적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통행 금지는 점점 다가오는데 불안했다.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갈 생각도 않고 마시고 추고 마셨다. 나는 점점 정신이 말짱해졌다.

그냥 둘을 두고 혼자 집에 갈까? 하지만, 술에 취한 친구를 버려두고 갈 수가 없다. 더구나 내가 둘 사이를 질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어 마냥 기다렸다. 드디어는 셋이서 호텔 방 거실에 말없이 앉아 있는 상황까지 갔다. 남자가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 친구도 눕겠다며 뒤따라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난 멍하니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또다시 테이블보를 긁었다.

'나 스스로 사라져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방 밖으로 나왔다. 호텔 직원과 마주쳤다. 우리 셋이 들어올 때부터 의아해하던 직원은 남녀가 데이트하는데 왜 호텔까지 쫓아왔냐며 눈치 없는 여자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통금이 해제될 때까지 있으라며 안내된 방에는 젊은 여자 대여섯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여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신참이니?
물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는 내가 촌스러운지 더는 말을 시키지 않았다.

연락이 오면 여자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쉴새 없이 들락거리는 것을 숨죽여 봤다. 겁이 덜컹 났다. 구석에 쥐 죽은 듯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통행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호텔 밖으로 쏜살같이 뛰쳐나왔다.

쌀쌀한 새벽 공기에 기분이 상쾌했다. 내 하이힐 똑똑 소리는 새벽의 명동거리를 경쾌하게 울렸다. 집으로 가는 78번 버스를 스쳐지나 보내며 하염없이 걸었다. 충무로 거리를 어제와는 다른 성숙한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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