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19, 2009

가지나물의 추억

보라색이라 항상 시선 끄는 채소,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짙은 보라색 가지 서너 개를 집어 들며 문득 생각에 빠진다.  

중학교 시절,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에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마음 씀씀이 또한 넉넉한 친구 집에 들러 함께 등교하곤 했다

루는 친구 집에 가니 등교할 준비도 안 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마지 못해왔니?” 했다. 내 
시선을 피하는 표정이 어두웠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주 우울한 그녀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기 싫어 혼자 학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친구의 부모는 이혼했고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져 아버지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지 그녀는 우리 또래와는 달리 어린 태를 벗고 성숙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친구가 새로 이사 간 집에 함께 가자고 했다. 산동네인 집에는 아무도 없었었다. 그녀는 잠깐 앉아 있으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루에 앉아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래 동네를 구경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갓 지은 하얀 밥과 김치 그리고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무친 가지나물이 놓인 밥상을 들고나왔다. 가지나물의 물컹거림과 색이 싫어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나물은 꿀맛이었다.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나물 맛을 못 잊어 친구를 닮아 어둡고 슬퍼 보이는 보라색 가지를 집어 든다. 가지나물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느긋한 날을 잡아서 한다. 너무 찌면 물러질까 봐 수시로 먼저 쪄진 것을 골라내느라 신경 쓰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물러진 것은 미리 꺼내어 가늘게 쪽쪽 찢는다.

라색 가지에 마늘과 초록색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색이 살아난다. 후추를 뿌리고 간장을 넣어 색을 약간 죽인 다음 참기름으로 윤을 내고 검은깨를 뿌려 마지막 처리를 한다. 그림을 그리듯 열심히 만들어 보지만 친구의 그 
가지나물 맛이 아니다. 나를 텐마루에 앉혀 놓고 부엌에 들어가 가지나물을 만드느라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까!  옛날 친구가 고맙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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