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항상 반바지 차림이다. 반바지라기보다는 박서 팬티만 달랑 입고 있다. 양쪽 팔 길이의 끈으로 서로 묶어진 두 마리의 강아지가 그의 뒤를 부지런히 발을 맞춰 따라간다.
그는 우리 집에서 열 불럭 떨어진 곳에 산다. 그에게도 허물어져 가는 집이 있었고, 와이프인지 걸프렌드도 있었다. 어느 날 집이 헐리고 여자가 떠난 후 그는 헐린 집터의 폐차 안에서 산다.
헐린 집터 자리도 반으로 줄었다. 재산세를 내지 못해 뉴욕시에 뺏겼단다. 철망으로 담이 쳐진 한쪽에 그가 살고 다른 한쪽은 공터로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철망엔 옷가지 등 걸 수 있는 것은 모두 걸어 놨다. 화장실도 부엌도 없이 폐차 앞 길가 쪽으로 식탁과 의자를 놓고 거실 겸 부엌으로 쓴다.
아침에 운동이 끝나면 둥근 빵에 뭔가를 열심히 발라먹는 그를 볼 수 있다. 식탁엔 과일, 빵 그리고 물과 양념 통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양념 통들은 지나다니는 차들이 품어낸 먼지로 무슨 통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
먹다 남은 음식을 쪼는 비둘기들이 식탁에서 항상 푸덕거린다. 식사 후 그는 흔들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며 가난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책을 읽는다. 이 남자는 ‘과연 목욕이나 하고 사는 건가?’ ‘하면 어디서 할까?’ 궁금했다.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YMCA 수영장은 서울 동네 목욕탕만큼이나 유난히 작다. 수영장에서 조용히 혼자 수영을 즐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멀리서만 유심히 관찰했던 그가 수영복도 아닌 길가에 항상 입고 다니던 그 팬티를 입은 채 풀장으로 텀벙 들어 오는 게 아닌가. 아차 싶었다. 수영을 못 하는 그는 씩씩거리며 물속을 헤집고 다니며 잘해 보려고 손을 허우적거리고 발로 물을 세게 걷어차며 기어가듯 수영을 했다. 작은 수영장 물이 밖으로 튀며 수라장이 되었다.
보다 못한 라이프 가이드가 “Calm down man.” 하며 진정시키자 수영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며 이런저런 폼으로 물속에서 왔다 갔다 난리 쳤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나갈 수도, 같은 물속에 있기도 찜찜해서 안절부절 수영장 한 귀퉁이에 가만히 붙어 있었다.
그날 나는 그와 함께 목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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