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2, 2023

마치 어제 일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만든 글 모임이 네 번째 (4년 차) 산봉우리를 올라가고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북클럽 회원 몇몇이 선생님을 모시고 글쓰기를 배운다기에 얼떨결에 끼어들었다. 글쓰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대학 시절 큰맘 먹고 올랐던 구례에서 시작해서 남원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고개를 하나하나 넘는 듯하다. 등정을 시작할 때는 과연 저 높은 곳을 오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등반을 끝내고 내려와서는 다들 즐거워하며 기뻐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힘겹게 넘고 또 넘다 보니 열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나왔다. 이 단편 소설로 뭘 어쩌겠다는 계획은 없다. 2페이지 이상 쓰지 못했던 글쓰기를 14페이지 이상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신기하다. 쓰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글이 생겨났다는 자체가 기쁘다.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지난 일들이 넘어야 할 산봉우리 (글을 써야 하는) 앞에 서면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는 것이 이상하다.


처음 글쓰기 시작할 때는 그나마 신문에 오랫동안 글을 써서 구애받지 않고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회원들의 글은 점점 좋아지고 발전한다. 나는 내 매너리즘에 빠져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찾지 못하고 우물가에서 헤매는 개구리처럼 쳇바퀴 돌듯 같은 글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만 쓸까? 생각하다가도 산에서 내려와 쉬다 보면 다시 올라가고 싶듯이 또 쓰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태원 잠수교 가는 대로변에 있는 크라운 호텔에서 해밀턴 호텔 쪽으로 가는 길가에 내 화실 있었다. 아버지가 오래전에 사둔 공터에 단층 하얀 건물을 지어줬다. 친구들은 하얀 집이라고 부르며 들락거렸다. 겨울이 끝나가는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화실 안에 석유 냄새가 밸까 봐 밖에 나가 붓을 빨고 있었다. 가녀린 여자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집에 사세요. 집이 너무 예뻐요.”

검은 코트 안에서 흰 셔츠가 살짝 빛났다. 그녀의 핏기 없는 작은 얼굴, 외로운 그늘이 가득한 큰 눈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화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차 한잔하고 가세요. 저도 지금 막 마시려던 참이었어요.”

“고마워요. 저도 한때는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크로키를 하러 왔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일 년 후, 나는 외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미국의 한 신문사의 에디터로 서울에 파견된 외국인을 만나 결혼했단다.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에 살며 그녀가 꿈꾸던 그림에 빠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잠재의식에서 고개를 불쑥불쑥 내미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까마득히 잊힌 지난 일들이 낡은 영사기를 통해 되살아난 듯 계속 글을 쓰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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