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릴 때, 늦게까지 잤다. 깨었어도 자는 척 누워있곤 했다.
“앞으로 어찌 살려고 이리 게으르냐.”
엄마는 늘 혀를 차며 벽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내 등을 어루만지곤 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라고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남편 닮은 큰아이는 몸이 욱신거리는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뭐든지 찾아서 움직인다. 나를 닮은 작은 아이는 태동도 없더니 태어나서도 조용하다. 학교 갈 시간이 거의 돼서야 간신히 일어났다. 내가 친정엄마를 힘들게 했던 짓을 아이가 그대로 했다. 집에서는 늘 누워 있었다. 왜 누워만 있냐고 물어보면 생각 중이란다. 어쩌면 말하는 것도 나와 똑같은지 나도 생각 중이라며 엄마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저러다가 제구실이나 할 수 있을지? 잔소리 해봤자 아이와 사이만 틀어질 것 같아 조바심쳤다. 내 눈에 띄지 않게 아이를 14살 때부터 해외로 봉사활동과 썸머스쿨을 보냈다. 대학에 가서도 거의 매 학기마다 해외 학교(abroad schools)로 보냈다. 늦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일본에서 3년 직장 다니다가 돌아왔다. 아이가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다 큰 아이들을 옆에 끼고 잔소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스러워 내가 맨해튼으로 분가했다. 그것이 약효를 발휘했나?
나를 애태우던 아이가 대학도 가고 직장도 잡고 비행기 시간도 놓치지 않고 여행도 하고 운동도 다니고 개도 끌고 다닌다. 데이트만 하고 걸프랜드는 만들지 않는다. 여자들 비위 맞추기 귀찮아서란다.
서부와 동부 시간 차이로 아침 11시에 시작하는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에 있는 직장을 잡아, 뉴욕에 살며 재택 근무한다.
“너 그렇게 조금 일하고 돈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
“내가 해야 할 일은 잘하고 있어요. 캘리포니아가 주 4일 근무제 도입되면 금요일도 일하지 않아요. 조금 일하고 많이 버는 직장이 좋잖아요.”
신기하다. 그렇게 누워 뭉개기만 하더니. 할 일 다 하고 뭉갰나? 우리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이웃집 창 안을 들여다보며 오지랖 떠는 나를 보면 신기해하겠지. ‘누울 자리 봐 가며 발 뻗는다.’고 부모 떠나 살려니 부지런들 해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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