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30, 2020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 없어요. 잠들 않아요.

나는 갈래 바람 불고,
눈송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 되어 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
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 아침의 고요 에서 어날 ,
그리다 비상하는 조용
날개 속에도 내가 있고
하늘에 빛나는 포근 에도 내가 있어요.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죽은 아니랍니다.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Mary Elizabeth Frye) 시다. 그녀는 나치의 출현으로 독일에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방문할 없었던 마거릿 슈바르츠코프 (Margaret Schwarzkopf)라는 이웃집 유대인 소녀에게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고 한다. 죽은 자가 산자를 위로하는 시란다.

코로나 19고인이 희생자들은 병원복을 입은 채로 시신 보관용 냉동 트럭에 보관된다2 안에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은 고인들은 뉴욕시 브롱스 하트 섬에 매장된다. 흰색 방호복과 마스크로 무장한 작업자들이 고인의 이름이 쓰인 소나무 관을 나란히 쌓아 묻는다.  연고자들이 있는 고인들도 포옹이나 키스로 작별 인사도 장례를 치러야 한다.

유족들의 슬픔을 어찌 위로할 있을까? 오히려 고인이 유족을 위로해야 지경이다.

나를 애지중지 사랑하던 엄마와 아버지의 장례식에 없었다. 엄마는 후에 돌아가신 것을 알았고 아버지의 죽음 또한 연락해 주지 않았다. 상속에 관한 불화의 불씨를 초장에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만 뿐이다. 누구를 탓하랴. 멀리 떨어져 부모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100 가까이 살다가 가셨기에 슬픔이 덜했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을 후에 알았을 나는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방바닥을 구르며 울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울다가  3 아이를 낳고 슬픔이 잦아들었다.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엄마가 떠나지 못하고 내 주위를 맴도는 듯하다.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시를 읊조리며 자신을, 엄마를 위로했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는 무덤에 없다. 엄마는 바람 되어 머리를 쓰다듬고, 가랑비 되어 뺨을 적시고. 햇빛 되어 나를 포근히 안아준다.

아버지가 간직했다가 전해준 엄마가 끼던 반지를 수시로 만지작거리며 혼잣말한다
엄마, 이젠 주위에서 맴돌지 않아도 . 편히 쉬어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in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softly falling snow.
I am the gentle shower of rain,
I am the field of ripening grain.
I am is the morning hush,
I am in the graceful rush.
Of beautiful birds in circling flight,
I am the star shine of the night.
I am in the flowers that bloom,
I am in a quite room.
I am in the birds that sing,
I am in each lovely thing.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bereft,
I am not there. I have not left.'

This is the poem by Mary Elizabeth Frye. She is said to have written poems inspired by a Jewish girl next door, Margaret Schwarzkopf, who was unable to visit her dying mother in Germany due to the advent of the Nazis. The poem is the dead comfort the living.

Victims who were deceased by Coronavirus are kept in a freezer truck for storage of their bodies while wearing hospital uniforms. Within two weeks, the deceased, whose relatives did not show up, are buried on the Hart Island in Bronx, New York City. Workers armed with white protective suits and masks bury pine coffins bearing the deceased's name side by side. Even the deceased, who have relatives, must hold a funeral without being able to say goodbye with a hug or kiss.

How to console the grief of the bereaved families? Rather, the deceased should console the bereaved family.

I couldn't go to the funeral of my mother and father, who loved me dearly. I knew about my mother's death two months later and didn't hear my father's death either. It is only assumed that it was because they tried to catch the feud of inheritance discord. Who should I blame? I just lamented my own situation where I couldn't serve my parents close to me.

My father lived near the age of 100, so I was less sad. However, when I knew my mother's death two months later, I became unconscious and cried rolling on the floor. Did someone say time was medicine? I cried every time I went to the bathroom, and after 3 years, I had my first child and my sorrows died down. My mother, who couldn't say goodbye to me, seems to be hovering around me without leaving. I comforted my mother and myself by reciting a poem tha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My beloved mother is not in the grave. My mom becomes the wind and strokes my head. She becomes gentle rain and wet my cheek. She becomes sunlight and warm hugs me.

I often talk to myself, touching the ring that my mother always wore 
"Mom, you don't have to hover around me anymore. Make yourself at home."

Saturday, May 16, 2020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장 보기가 두렵다.

밖에 나가지 않는 나에게 코로나에 걸릴 있는 곳은 가지 않으면 되는 그로서리 마켓이다. 그러나, 아침 7시부터 마켓 들어가는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줄에 서서 기다리다 보고 나와서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면 마켓에 들어갔다 나와선가?’ 하는 상상의 고민을 하는 것은 더욱더 괴롭다.

24시간 문을 여는 마켓도 사람이 없는 새벽과 밤에 가봤다. 사람들이 다니는 공간이 홀푸드처럼 넓지 않아 살얼음을 걷는 불안했다. 배달도 해봤다. 배달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고 주문한 물건이 제대로 오지 않아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아침 산책이 끝나면 7 30분에 블록 떨어진 초등학교에서 아침과 점심을 픽업한다. 뉴욕시가 아이들에게만 주던 음식을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반인에게도 준다.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빛의 속도로 들어갔다 나온다. 마켓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샌드위치, 우유, 시리얼, 요구르트, 과자, 치즈 그리고 주스 등등 특히나 사과를 많이 준다. 명분을 줄까 물어본다. 남편이 브루클린 스튜디오에서 지내기 때문에 나는 인분만 가져온다. 일주일에 두세 번만 가도 혼자 먹기에, 충분한 양이다. 수저와 포크 그리고 냅킨도 주기 때문에 설거지할 필요가 없다. 먹기 싫은 샌드위치에 사과를 납작하게 썰어 끼워서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빛의 속도는 아니지만 좋게 가까운 교회 길가에서 장바구니 가득 온갖 채소, 깡통, , , 호두, 과일 등을 얻었다. 채소들은 잘게 썰어 고춧가루 조금 넣고 김치 샐러드처럼 만들었다. 인컴 따지지 않고 달에 번만 준단다.

어느 , 한두 명뿐이거나 아예 줄을 필요가 없는 와인 가게에 들어가려다 홀푸드 앞에 사람이 대여섯 명만 있었다. 옳다구나하고  들어갔다. 그동안 먹지 못한 고기, 새우, 달걀  두부등을 샀다. 가격도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내고 사는데도 횡재라도 만난 신이 났다.

집에 와서 기운이 없고 으슬으슬 떨렸다. ! 혹시 걸린 것이 아닐까? 아니면 밥을 자주 먹지 않아서 기운이 없어서일까? 걱정했다. 안남미 쌀과 깡통에 검은콩을 잔뜩 넣고 밥을 했다. 김치 샐러드에 스테이크를 칼질하며 와인을 ~ 들이키니 같다.  와인 한잔 가득 따랐다. 세상만사 걱정 붙들어 황홀경이다. 이래서 불경기인 요즈음 사람들이 술타령으로 가게가 불이 나는 모양이다.

일단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병원에 들어가서 온갖 의료장비 코에 꽂고 누워 있지 않는다. 지금 나의 사명은 가족을, 이웃을, 사회를 그리고 나라를 위해 자조가 최선이다.

If can't avoid it, enjoy it

I'm afraid to go grocery shopping.

For me who doesn't go outside, the place where I can get the coronavirus is the grocery market where I have to go. However, the line to enter the market continues from 7:00 am. It's even more painful to image 'Am I sick because I went in and out the market?' if I feel any strange after shopping.

I also went to a market, which is open 24 hours at dawn and night without people. The space for people to walk was not as spacious as Whole Foods Market, so I was anxious as if walking on ice. I also tried delivery. It's hard to wait for deliveries that don't come on time and my order wasn't delivering properly.

But I guess there is no situation to starve to death. After the morning walk, pick up breakfast and lunch at the elementary school two blocks away at 7:30. The food that was given only to children is given to the general public as the situation worsens. If I really add a little lie, it goes in and out at the speed of light. It's much more safer than hanging around the market.

Sandwiches, milk, cereals, yogurt, snacks, cheese, juice, a lots of apples and so on are  given. If I pick up two or three times a week is enough for me to eat alone. It also gives spoons, forks and napkins, so I don't have to wash the dishes. If I cut an apple flat into a sandwich that I don't want to eat, it's worth eating.

It is not the speed of light, but luckily by the street in front of the church, I got all kinds of vegetables, cans, rice, beans, walnuts and fruits. The vegetables were chopped into small pieces and made into kimchi salad with a little bit of chili powder. It is given only once a month, regardless of the income.

One day, there were only five or six people in front of the Whole Foods Market as I tried to enter a wine shop where there was no need to long line up. I bought meat, shrimp and egg, tofu that I haven't eaten so far. Prices are not much different from before. I was excited as if I had met a windfall even though I paid my own money.

I felt cold and shivering when I got home. Oh! Maybe I got the coronavirus? Or is it because I don't eat Korean food often? I was worried. I put in a lot of black beans and cooked rice. I drank a glass of wine while eating steak. I feel like I'm going to live. I poured another glass of wine. It's ecstasy as if everything in the world has been resolved. This is why these days, when the economy is in recession, there seems to be busy in the liquor store due to the drinking spree.

First, I should not get the Coronavirus. That way, it doesn't move to someone else, I will not lie down with all medical equipment in my nose at the hospital. My mission now is self-help for families, neighbors, society and the country.

Saturday, May 2, 2020

미니멀리스트의 KO패

간디가 존경한 수제자이자 동지였던 비노바 바베, 그는 쓰레기 치우기를 영적인 차원으로 해석한다. 주변에 널린 쓰레기를 그냥 두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 있는 쓰레기도 참지 못하므로 치워버리고픈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충동이다. 그에 따르면 청소하는 것도 수준이 있다. 처음에는 어지간하고, 조금 지나면 깨끗해지고 다음에는 아름다워지고, 마지막에는 성스러워진다. 치우고 치우면 그것은 수행이 된다.’

나는 평상시 위와 같은 누군가의 글귀를 무척 좋아한다. 사다 쟁여 놓고 필요 없다고 버리느라 애쓰기보다 아예 사재끼지 않는 미니멀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런 습관이 코로나 사태로 완전히 참패했다. 엎친 덮친 격으로 냉장고에 남은 먹어 치우고 여행 갔다 와서 신선한 사다 먹어야지 했던 여행 계획이 불행히도 이번 사태와 맞물렸다. 그래도, 아무리 설마하다가 화들짝 놀랐을 때는 이미 슈퍼마켓 선반은 약탈당한 널브러져 있었다.

L.A. 사는 친구는 배추 4박스를 사다 김치 담그고 10포대나 쟁여놓았단다. 뒤뜰, 레몬 나무 그늘에서 삼겹살 바비큐를 즐기고 노천 온돌방에 누워 하늘의 별을 센단다
지금 올리냐?”  
그러게 평상시에 쟁여 놓지. 너의 취미생활인 근검절약, 미니멀 라이프 어쩌고저쩌고하다가 일이니? 너희 주소 . 내가 일용할 양식 보내줄게.” 
제발 내비도. 물건 보낸다고 우체국에 드나들다 바이러스 걸리면 좌불안석, 음식이 제대로 삭히겠냐. 밖에 나가지 말고 건강해야 너희 가족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지.”

아침 일찍 보러 갔다. 홀푸드에 도착하기도 멀리서도 늘어선 줄이 보였다. 트레이드 조는 말하면 하랴. 물론 페이퍼 타월도 휴지도 별로 없다. 세정제야 말할 필요 없이 아예 없다. 그래도 대체하며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집안을 정리하며 쓸어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홑이불 껍데기를 걸레로 사용하려고 가로세로 10인치 크기로 잘랐다. 찬장 안을 청소하며 먹을 것을 죄다 꺼냈다. 놓고 먹지 않은 깡통, 밀가루, 종류, 스파게티, 감자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사지 않았는데도 많다. 아쉽게도 쌀이 조금밖에 없다. 냉장고 청소도 했다. 깻잎장아찌가 많다. 팔짱을 끼고 식탁 위에 늘어선 먹고 싶지 않은 음식들을 째려본다.

코로나 사태가 어찌 알았을까? 아들 친구가 3 전에 디자인 마스크를 만들어 팔았다. 당시에는 팔리지 않던 것이 지금은  불티나게 팔린단다. 바쁜 와중에 우리 부부에게 2개씩이나 줬다.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비록 깡통 음식으로 연명하는 입이지만 마스크만은 명품으로 가렸다. 살다 살다 이런 묘한 세상을 맞이할 줄이야. 어쩌겠는가! 디자인 마스크라도 쓰고 위로받으며 나름대로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