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서 깨어날 때,
원을 그리다 비상하는 조용한 새의
날개 속에도 내가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포근한 별 중에도 내가 있어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죽은 게 아니랍니다.’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서 깨어날 때,
원을 그리다 비상하는 조용한 새의
날개 속에도 내가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포근한 별 중에도 내가 있어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죽은 게 아니랍니다.’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Mary Elizabeth Frye)의 시다. 그녀는 나치의 출현으로 독일에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방문할 수 없었던 마거릿 슈바르츠코프 (Margaret Schwarzkopf)라는 이웃집 유대인 소녀에게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고 한다. 죽은 자가 산자를 위로하는 시란다.
코로나 19로 고인이 된 희생자들은 병원복을 입은 채로 시신 보관용 냉동 트럭에 보관된다. 2주 안에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은 고인들은 뉴욕시 브롱스 하트 섬에 매장된다. 흰색 방호복과 마스크로 무장한 작업자들이 고인의 이름이 쓰인 소나무 관을 나란히 쌓아 묻는다. 연고자들이 있는 고인들도 포옹이나 키스로 작별 인사도 못 한 채 장례를 치러야 한다.
유족들의 슬픔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고인이 유족을 위로해야 할 지경이다.
나를 애지중지 사랑하던 엄마와 아버지의 장례식에 갈 수 없었다. 엄마는 두 달 후에 돌아가신 것을 알았고 아버지의 죽음 또한 연락해 주지 않았다. 상속에 관한 불화의 불씨를 초장에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누구를 탓하랴. 멀리 떨어져 부모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한 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100세 가까이 살다가 가셨기에 슬픔이 덜했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을 두 달 후에 알았을 때 나는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방바닥을 구르며 울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울다가 3년 후 첫 아이를 낳고 슬픔이 잦아들었다.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엄마가 떠나지 못하고 내 주위를 맴도는 듯하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시를 읊조리며 나 자신을, 엄마를 위로했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는 무덤에 없다. 엄마는 바람 되어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가랑비 되어 내 뺨을 적시고. 햇빛 되어 나를 포근히 안아준다.
“엄마, 이젠 내 주위에서 맴돌지 않아도 돼. 편히 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