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원숭이 같은 여자, 사과처럼 홍조를 띤 젊은 여자, 바나나처럼 매끈한 여자 그리고 방금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당당한 비행기 같은 여자 넷이 지하철 문이 닫히기 바로 전,
부리나케 탔다.
원숭이가 침묵을 깨고 비행기에게 묻는다.
“혹시 우리가 유학 올 때 국가시험 치고 오지 않았어? 국사와 일반사회였던가?”
“그럼, 봤지.
암, 봤고말고. 우리는 국가 대표로 왔지.
국가시험뿐만 아니라 3일 동안 반공교육까지 받고 왔잖아.”
가물가물한 먼 옛일을 일말의 의심 없는 당당한 목소리로
비행기는 대답한다.
“JFK에 내리자마자부터 동양사람이
다가오면 첩자들이 지령을 받고 접선하는 줄 알고 피해 다녔잖아. 지금까지 이북에서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바나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경청하며 소리 죽여 웃는다. 사과는 별로 이야기에 흥미가 없는 듯 커피만 홀짝거린다. 원숭이는 큰소리로 웃다가 입을 가리고
주위를 살핀다. 그들의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지하철 소음에 묻힌다.
사과는 거울을 꺼내 홍조 띤 얼굴에 붉은 사과색 립스틱을
더욱더 붉게 칠한다. 거울 속 잘 칠해진 입술을
확인한 사과가 바짝 몸을 그들 앞으로 들이 되더니 붉은 입술에 검지를 얹는다.
"쉿~ 오늘 우리 모임에 누구는 끼고 누구는 끼워 줄 수가 없었어.
비밀로 해.”
속삭였다. 그들은 방금 첩자
이야기를 끝내는 중이었다.
“아! 비밀 요원.”
주위에 누가 그들의 기밀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획 둘러본다. 폭설이 휘몰아치는
만주벌판을 달리는 기내에 승객을 가장한 여자 독립투사 무리 인양 서로 눈짓을 교환한 후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지하철 안으로 우르르 탈 때 선글라스에 모자를
깊숙이 쓴 늙수그레한 남자가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여자들의 수다에 취해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었다. 갑자기 그녀들은 화들짝 내려야 한다며 소란을 떨었다. 남자는 그들의 목적지가 궁금해 계속 따라가고 싶었다. 그도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따라 내렸다.
비가 오려고 꾸물거리는 흐린 날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날씨로 사람들은 외투 깃을 올리고 부지런히 어디론가
바삐 간다. 그도 깃을 올리고 군중 속에 묻혀 재잘거리며 바삐 걷는 그녀들의 뒤를 쫓는다. 일상의 족쇄에서 비켜나간 듯이 빠져나와 내딛는 그녀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거침없다. 마치
국가 대표에서 반공주의자로 드디어는 비밀 요원으로 잽싸게 변신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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