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놀 기회가 있으면 마지막 파장까지 죽치고
남는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즐겼던 장면, 장소, 이야기 등을 기억했다가 이따금 떠올리며 히죽히죽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모임에서 선배님이 1박 2일 파자마 파티를 열었다.
모두 13명 중 8명이 밤샘했다.
선배님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렸다. 우리들은 와인 한 병만 들고 오라시더니.
은퇴한 의사인 선배님 남편은 우리가 불편하지 않게 챙겨주셨다. 몰려간 우리는 그저
황공할 따름이었다.
예전에도 지인 몇 명과 함께 선배님 집 근처 영화관에
간 적이 있다. 우디 앨런 작 ‘미드나이트
인 파리(Midnight in Paris)’였다. 잡을 수 없는 지나간
시간에 애착을 그린 영화로 비가 추적추적 오는 파리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잘 풀리지 않는 미국 작가가 파리에
여행 와서 어느 날 밤 산책하던 중 시대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랍스터 식당으로 안내한 박사님이 랍스터 껍질을 손수 벗겨 각자 접시에
계속 놓아 줬던 친절이 잊히지 않는다. ‘역시 능력 있는 남편이 아내에게도 잘하는 것을 보며 자상한 남편을
둔 선배님이 몹시 부러웠다.
준비한 음식은 내 생전에 먹어본 적이 없는 프랑스
음식 같기도 하고 아니 이탈리아식인가? 뭘 알아야지 설명하겠는데
나의 상차림과는 달랐다. 나는 그동안 어찌 그렇게 후줄근하게 살다가 이런 호사스러운 장소에 초대받았을까?
할 정도로 나 자신의 빈약한 삶을 뒤돌아보게 했다.
자정이 되자, 마음속에 감춰둔 각자 이야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 옆에 누가 앉아 이야기하다 다른 친구에게 넘겨져 또 다른 속사정으로 이어지고 귀 기울이고. 두 팀으로 나뉘어 이야기하다 한 팀이 돼서 흥분하고. 초가을 밤이 후딱 지났다.
다음 날 아침 파자마를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우리들의 수다는 차 안에서 또 ‘사이런트 산행’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결국엔 산행하기
전에 ‘침묵 드라이브’로 연습해 보자는 제안에 우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한참의 침묵 속에서 남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다 보니 포트리에 당도했다.
“마누라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아주 신이 났군. 꿈속에서 또 파티야?”
남편이
흔들어 깨웠다. 영화에서처럼 나는 뉴욕에서 잘 풀리지 않는 작가로 어느 모임에 초대받는 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임의 친구들은 성공해 귀부인들이 되어 우아한 차림으로 등장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