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이
금세 어둑어둑해진다. 눈이 침침해 붓을 놓는다.
낮이 짧은 으스스한 겨울엔 정말 살맛이 나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부산을 떤다. 커다란 솥에 멸치, 다시마,
양파 그리고 빨간 고추를 넣고 끓인다. 남편 말마따나 우리 집 홈메이드 ‘여물’이다. 끓인 국물을 병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고
국수도 말아먹고 된장국 그리고 미역국, 만둣국도 끓인다.
빨간 고추가 들어가면 매콤해지며 국물 맛도 살아난다. 지난가을에 직접 농사를 지었다며 뉴저지 교외 울창한 숲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어느 독자가 줬다. 죽~ 펴서 말리라면서. 스튜디오에 펴서 말리다 썩기라도 하면 귀한 고추를 망칠까 봐 가져오자마자 냉동칸에 넣었다. 잘게 썰어 음식에 넣으면 빨강 꽃이 피는 듯 곱다. 멀리서 가져다준 독자에게 넙죽 받기만 하고
보답하지 않아 미안하다. 그리고 늘 고맙다.
이웃 채소 가게 주인은 본인가게 채소를 먹지 않고
뒤뜰에 직접 키워 먹는단다. 그 말을 들은 나도 농사를
짓고 싶다. 그러나 땅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군가 직접 키운 것을 주면 신줏단지 모시듯 한
잎도 낭비하지 않는다.
국물을 작은 불로 해 놓고 허브 티와 책을 들고 욕실로
간다. 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냉동칸에 넣어둔 쑥을 한 움큼 넣고 발을
담근 채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브는 작년 가을 수십 종의 허브 농사를 짓는 뉴저지
친구에게 추수할 때 얻어왔다. 그리고 말려 보관해 놓은 것이다.
하루에 한 번 타서 계속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신다. 각종의 허브가 몸 어디에 좋다고
자상하게 설명해 준 친구 남편 말을 되새기며. ‘만병통치’라는 그 차를
마셔서인지 몸이 늘어지다가도 기운이 난다. 허브 농사뿐만 아니라 재봉틀도 잘하는 친구 남편이 여러 명에게
만들어 나눠 준 스카프를 목에 두르면 그 넉넉함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열쇠 따는 달카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누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신발을 벗고 코를 벌름거리며 저녁거리로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는 모습으로
들어온다. 싸구려 와인을 곁들인 밥상에 앉아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며 긴긴 겨울밤을 무탈하게 지내고 봄이
빨리 오기를 바랄 수밖에!
유난히 춥던 올해 초, 빌딩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허드슨강 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가던 허연 얼음장도 녹아 보이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만나 수다
떠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어둡고 지루한 겨울을 밀고 당기며 몰아내면 따스한 봄이 성큼 다가오겠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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