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16, 2017

물풀처럼

오랜 세월 아침마다 읊던 꿈 타령이 멈췄다. 지난밤 꿈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꿈을 기억하지 못하다 현실도 서서히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서울에서 고등학교 친구 7명이 미국을 방문했다. 내가 저 멀리 아담한 집을 가리키며 우리 집이라고 설명하며 함께 가자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왜 그 집 안에 들어 선적도 내부구조도 알 수 없는지?’를 궁금해하면서.

갑자기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중 한 인디언이 서부영화에서처럼 총을 꺼내 쏘기 시작했다. 재빨리 헛간으로 숨어 들어가 문틈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친구들은 인디언들과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혼자가 되어 산길을 헤매다 꿈에서 깨어났다.

남편이 나의 꿈 타령을 싫어하며 들어주지 않아 20145 22일 아침에 적어 놓은 꿈 내용이다.

요즈음은 전날 밤 꿈을 떠올리려고 해도 꿈을 꾸긴 꾼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꿈자리가 사납다.’며 해몽을 찾아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의 주며 신경 쓸 일이 없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친구에게 상처 준말을 기억해 내 밤새워 뒤척이며 고민할 일도 없어졌다. 물론 남들에게 들은 언짢은 소리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물며 남편과 방금 토닥거리던 말다툼조차도 잊어버리고 히히대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사과를 차 안에 그리고 실내 곳곳에 놔둔다. 오래 두면 물기가 빠져 쭈글쭈글해지며 향내가 진동하다 말라 비틀어지면 버린다. 나이 든다는 것은 사과의 형체가 소멸하듯 나라는 물체에서 모든 기가 빠지고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며 신경도 느슨해져 평화로워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늙는다는 것은 사과의 붕괴 과정과는 다르다. 영원히 살 것 같았던 삶이 병과 투쟁한다. 한숨의 낮과 꺼져 드는 긴긴밤이 이어진다. 외로움에 뒤척이다 서글픈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다.

쓴맛을 삼키고 나니 세상이 멋지고 달달한 이 나이에 애집과 섭섭함을 버리자. 정답은 정답이 아닐 수 있으니 굳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건강할 때까지 놀랄 때 깨어나고 깨어날 때 창조하자. 썩힘과 삭힘을 구별하며 물풀처럼 나타날 듯 말듯 숨겨진 듯 살자.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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