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고 남은 멸치 볶음과 오이지에
밥을 먹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배가 고프다. 빵 위에 치즈를 깔고
사과와 아보카도를 얹어 입에 쑤셔 넣었다. 티도 한잔 가득, 포만감에
러그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오늘은 무엇을 그릴까? 를 생각한다.
어젠 ‘흔적’이라는 작품을 끝냈다.
‘흔적’ 웃긴다. 사춘기 소녀 같은 제목이지만,
그냥 그렇게 붙이고 싶었다.
‘흔적’이란 무엇일까? 지나간 기억, 머물렀던 시간,
남겨진 자국. 캔버스 위에 하얀 물감으로 긁적거렸었다. 조금 어두운 바탕 위에 그려야 드러날 텐데. 아니지 굳이 분명할 필요는 없다.
흔적이란 흐지부지하다 사라지는 것이니까.
갑자기 가스, 전기, 전화, 크레딧 카드, 인슈런스 그리고 시어머니 상조회비, 내야
할 빌이 작업 구상 중에 불현듯 떠올랐다. 붓을 놓았다. 빌을 정리하고 나니 이미 해는 떨어졌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다. 부지런히 도마질한다. 오이지는 빨리 정확한 간격으로 잘도 써는데 왜 그림은 안 되느냐고! 떡 썰던 한석봉 모친이 아들을 구박하듯 자신을 탓한다. ‘먹고 사는 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니 안 되지.’라며 위로하지만, 언제까지 변명만 하다 죽으려는지!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다. 부지런히 도마질한다. 오이지는 빨리 정확한 간격으로 잘도 써는데 왜 그림은 안 되느냐고! 떡 썰던 한석봉 모친이 아들을 구박하듯 자신을 탓한다. ‘먹고 사는 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니 안 되지.’라며 위로하지만, 언제까지 변명만 하다 죽으려는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에서 읽은 ‘챈들러 방식’으로 작품에 몰두해 볼까?
‘우선은 책상 하나를 딱 정하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그리고 그 위에 원고지며 만년필 자료 등을 갖춰놓는다. 언제든 일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일정시간 –예를 들어 두시간이면 두시간-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것이다. 물론 그 두시간 동안 슬슬 글을 쓸 수 있다면야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러나 글이란 그리 쉬이
써지는 것이 아니니 한 줄도 못 쓰는 날도 있다. 쓰고 싶은데 도무지 제대로 써지지 않아 짜증이 나서 내던질
때도 있고 처음부터 글 따위 조금도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또는 직관적으로 오늘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좋다고 깨닫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설령
한 줄도 못 쓴다 해도 아무튼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있어도 된다. 대신 딴청을 피워서는 안 된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해서는 안 된다. 쓰고 싶어지면 언제든 쓸만한 태세를 갖추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러고 있다 보면 당장은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하게 굴면서 불필요한 일을 해봐야 얻어지는 건 없다. 이것이 챈들러 방식이다. 나는 이런 방식을 비교적 좋아한다.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