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가 가장 좋았지?”
화진포는 6.25전 이북 땅이었다. 지금도 김정일이 3살 무렵 뛰어놀았다는 김일성 별장, 이승만 그리고 이기붕의 별장이 표기된 커다란 관광 표지판이 있는 동해 최북단 해수욕장이다.
대진항으로 접어드는 길목 언덕에 자리 잡은 펜션에 짐을 풀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보라를 볼 수 있는 깔끔한 숙소였다. 로맨틱한 주인의 손끝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방의 구석구석이 정겹고 멋졌다. 애정이 깃든 펜션에 대한 손길을 흩트리기 싫어 몸만 침대 속에 넣었다 빠져나왔다.
“아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가 가장 좋았어.”
남편과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눈 대화였다.
동해안을 돌다 뉴욕에 오기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으러
개인병원에 1박 2일로 입원했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인 친구가 나를 아래위로 흩어보고 돌아서 보라더니 한다는 소리가
“신장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건강검진을 받고 가는 게 어때?”
남편에게도 간이 좋지 않아 보인다며 급기야는 친구가 잘 아는 개인병원에 입원했다.
뽀송뽀송한 하얀 시트가 정갈하게 깔린 소박한 병원 독방
침대에 피곤한 몸을 던졌다. 남편도 옆 병실에,
남편과 병실을 분리해 놓으니 가까운 듯 먼 것 같은 느낌이 싫지 않았다. 보고 싶으면
볼 수도 있고, 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느낌이랄까!
뉴욕에서의 삶이 산에만 들어가지 않았지 수도승처럼
살았다. 그런데 서울에 나와 남편의 개인전을 핑계로 갑자기 사람을 하루에도
수없이 만났으니 피곤할 수밖에. 두꺼운 눈꺼풀을 치뜨며 텅 빈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전에 소독 냄새가 솔솔
나는 포근한 하얀 시트를 매만지다 잠에 빠졌다.
주요섭이 쓴 소설 ‘구름을 잡으려고’에서 평생 고된 노동으로
고생만 한 주인공 준식도 하얀 병원 시트에 누워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20세기 초, 기회의 땅 미국에 와서
한 많은 이민 생활을 살다 빈 털털이가 되어 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내용이다.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구름,
그 구름을 잡으려고 앞만 보고 달렸지만 잡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위와 대장 내시경을 한다며 간호사가 옆으로 누우랬다. 내 몸에 비해 커다란 병원 가운이 옆으로 누우니 겹쳐져 불편했지만,
곧 수면 상태가 될 텐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수면 마스크가 씌워졌다. 무의
상태가 되었다. 내가 계획하는 하루하루가 정확히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불편했던 일상은 걱정 없이 편안해졌다.
머릿속에서 더는 반복되는 일상을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이리도 편할 수가! 죽음도 이처럼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이 죽어간다며 괜찮지 않겠는가! 내생에 가장 편한
순간이었다.
몇십 년간 대장에 쌓인 쓰레기 청소도 했고, 작은 종양이긴 하지만 3개를 떼어냈다.
공항 가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고마워.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비행기 타러 가고 있어.” 또 올게.”
“서울에 작은 집이라도 하나 마련해 놓는 게 어때? 노년에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 않아?”
“왜 큰 집 사면 안 돼?”
“크면 관리하기가 어렵잖아.”
우리는 이렇게 또다시 뜬구름 잡는 일상으로 돌아와
크고 작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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