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9, 2011

장사꾼과 봉투

친정 집에서 내려다보면 큰 울안에 주홍색 감이 탐스럽게 열린 집이 보였다. 그 집에 얼굴이 희고 점잖은 아저씨가 음악 선생님이다. 사모님도 키가 훤칠하고 빼어난 미모로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집이다. 우리 아버지도 선생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전, 아버지도 한때는 수학 선생을 하려 했으나 조직 생활이 맞지 않아 포기하셨다. 자격증을 친구에게 넘기고(팔고?) 장사꾼이 됐단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내가 갑자기 환한 세상을 보고 놀라 울부짖던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돈을 세고 있지 않았나 할 정도로 친정아버지는 천생 장사꾼이다.

대학 졸업 후 부지런히 이력서를 여기저기 내봤지만 오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취직이 안 되면 장사라도 하랄까 봐 선생이 되는 순위고사를 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버지 아무래도 서울 순위고사는 힘들 것 같아요. 경기도 순위고사를 볼까 봐요. 
다른 사람도 다 너 같은 생각으로 경기도 순위고사를 본다고 그곳으로 몰릴 거. 이럴 때 너는 서울 순위고사를 보는 거야. 
아버지 말이 맞았다. 경쟁률이 오히려 경기도가 높았다. 난 운이 좋게 높은 순위 안에 들어 집에서 가까운 남자 중학교 교사로 채용됐다.

이수임 선생님 혹시 아버지 성함이? 
발령받고 얼마 있지 않아 교무주임이 물었다.
어떻게 우리 아버지를. 
나 몰라요? 
모르겠는데…” 
감나무 집! 
생각이 났다
"코흘리개가 커서 이렇게 선생이 되다니 혹시나 해서 선생 기록부를 보니.

담임도 맡지 않은 나에게 물 공세가 쏟아져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다른 과목은 시험으로 결정이 나는데 미술과 음악은 선생님의 재량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예능점수가 낮으면 평균점수가 낮아지므로 타격이 크게 작용하는 과목이라는 것이다. 돈 봉투를 거절하니 제일모직니트 원피스를, 사파이어 목걸이를, 랑콤 화장품을 학부형들로부터 전해 달라고 담임 선생님들이 가져왔다. 받지 않겠다고 극구 사양해도 자기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달라며 놓고 갔다

뇌물을 준 대부분 학생이 공부도 잘하지만 그림도 잘 그려 높은 점수를 줘야지 했던 학생들이다. 아이들이 뇌물을 받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 가까이 가서 지도하기가 불편했다.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망설여져 괴로웠다. 결국엔 물이 아이에게 역효과를 가져왔다. 뇌물을 거절하면 담임선생님들과의 인간관계가 힘들어지고 받자니 아이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안정된 직업도 있겠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길만이 남았는데 점점 학교 가기가 싫어졌다. 결국, 나도 그 아버지의 딸로 조직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유학을 핑계로 학교를 떠났다.

유학 중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감나무 집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모님이 주시는 차를 마시며 함께 했던 선생님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절 때인지 학부형으로부터 선물이 배달된 모양이다. 80년대 초 선물로는 마이크로 오븐이 대세였는지 
옆 선생은 마이크로 오븐도 받았다던데 마이크로 오븐은 없나?
라는 선생 말에 조용히 찻잔을 놓고 바삐 갈 곳이 있다며 나왔다.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사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가 자주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가 뭐래도 장사꾼이 제일 양심적으로 돈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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