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모님 알겠습니다.”
남편이 커피를 끓이러 간 사이 나는 추운 날 지붕 속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플로렌스에서 공부했던 아들을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 베니스 여행을 끝내고 플로렌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기말고사로 바쁘다며
“엄마 내가 필요하면 이메일 해요. 차오.”
인사하더니 바삐 학교로 가 버렸다. 그리고는 여행 중 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들의 차가움이 절절히 느껴졌다. 호텔이 낯선 창고인양 그 안에 갇힌 듯 답답하고 다리에 힘이 죽 빠졌다. 창밖 사그라지는 황혼이 감싸는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은 주홍색 지붕들이 물결치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끝 간데없는 지붕 속에서 삶의 비애가 속삭이며 나를 위로했다.
‘너만 슬픈 것이 아니야. 우리도 힘들어.’
집마다 지붕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암암리 꿈틀대는 애환이 많다.
우리 친정 옆집에 남편이 죽자 딸 아이 둘을 데리고 갓 난 남자아이 하나 있는 영감에게 재가한 아줌마가 살았다.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가 산다는 것이 이상했다.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영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다행히 가게 터와 살림집을 영감이 남겨서 본처에서 난 사내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웠다.
아줌마의 둘째 딸은 디즈니 만화 영화에 나오는 포카혼타스처럼 생겼다. 나는 매력적인 그 언니를 따라다녔다. 친절한 그 언니는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위문 편지인 내 숙제를 대필해주곤 했다. 결국엔 휴가 나온 군인 아저씨들이 그 언니를 만나보고 싶다고 학교로 나를 찾아오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글을 곧잘 썼던 그 언니는 펜팔로 미국에 사는 남자와 사귀다 결혼해 한국을 떠났다.
본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귀던 여자와 가정을 꾸렸다. 평화로웠던 집안이 며느리가 남편에게 ‘친엄마도 아닌데’라며 꾀어 재산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딸을 출가시키고 아들만을 믿고 살던 아줌마는 당황하여 우리 부모님에게 하소연했다. 그 아줌마가 불쌍했다. 위로한답시고 아줌마가 다니던 영락교회에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4층에 살던 나는 창밖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지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꿈틀댈까? 생각하며 창가에서 서성이다가 오지랖이 발동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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