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에 무언가 붙어있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아이가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묘한 모습에 대한 놀람이다. 옛날 흑백 사진을 보면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모습이다.
아이를 많이 낳던 예전엔 엄마가 들일이나 집안 살림할 때 너 나 할 것 없이 언니가 동생들을
업어 키웠다. 업고 밖에 나와 공기놀이도 하고 줄넘기하다 동생이 포대기에서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고 놀던 시절 말이다.
친구가 허구한 날 동생 다섯을 등에 업어 키웠단다. 별 투덜거림도 없이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모습을 눈여겨본 친척들이 착하다고 몇 푼 쥐여주며 자기 아이들도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웃
아이까지 업어줬다니! 업힌 아이가 오줌을 싸서 등줄기가 뜨뜻해지고 축축해질 때까지도 업고 있다 등에 업힌
아이와 함께 훌쩍거린 적도 있단다.
지금도 그녀는 주위의 모든 이들을 어릴 적 동생과 친척 그리고 이웃 아이들을 돌보듯 한다. 모임이 있을 적마다 밥값을 아예 손에 쥐고 아무도 못 내게 해서 본의 아니게 몇 번 얻어먹었다.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겠다며 만나자고 했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자기가 사지 않을 거면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배가 고프다며 간신히
달래서 식당에 들어갔지만, 현찰을 손에 쥐고 자기에겐 더치페이조차도 없단다.
아이들을 업어서 잘 돌보니 친척들에게 용돈을 틈틈이 받아 주머니가 항상 두둑해서 한국에서부터 밥값은 자기가 냈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단다. 그러면 ‘밥을 얻어먹은 불편한 내 마음은 헤아리지 않냐?’고 반문했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밥을 사며 위로해주면 위안을 받지
않겠냐며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거란다.’
내가 아는 그녀의 부모는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마음씨 고운 그녀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만, 내가 먹은 것은 내가 부담하는 것이 속 편한 내
성질에 과연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 한 현자가 이렇게 말한 구절이 그녀를 보며 떠올랐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모든 일과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과
우리가 겪은 일들을 다 합친 것이오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던 모든 것들이며
우리가 영향을 끼친 모든 존재요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일어날 모든 일이며
우리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모든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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