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5, 2017

꿈은 이루어졌지만

재작년 12월 중순 어둑어둑해져 가는 저녁, 이메일이 들어왔다
"네 이메일 주소를 구글에서 찾았다. 나를 기억하니? 1978년에 파리로 떠난 이 아무개라고?"

내가 어찌 이 친구를 잊을 수 있을까! 이 친구의 연락처를 찾아 수시로 구글에 이름을 쳐대곤 했지만, 찾지 못하고 꿈속에서나 만나며 그리워하던 친구다.

대학 입학을 하고 같은 과 친구들이 맘에 맞는 짝을 찾아 즐길 때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는 나처럼 혼자 다니던 이 친구와 어울렸고 또 다른 친구가 합세해 학창시절 내내 붙어 다녔다사귀는 남자가 모두 없던 졸업을 앞둔 연말,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앞으로의 소망을 넋두리하곤 했다. 이 친구는 파리로 가서 공부하기를 원했고 다른 한 친구는 결혼하기를 그리고 나는 선생이 되기를 바라는. 실지로 우리 셋의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꿈을 갖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지금까지도 믿을 만큼 그대로 아주 똑같이 이루어졌다. 이메일을 받는 순간 너무 반가웠다.

셋이서 술을 마시고 헤어져 집에 오는 길에 너무 많이 마신 이 친구의 하이힐 뒷굽이 빠져 없어진 줄도 모르고 찔뚝거리며 큰소리로 웃으며 밤길을 걷던 기억. 또 다른 한 친구는 졸업 전부터 결혼한다고 선보러 갈 때마다 엄마가 새 옷을 해 입히는 정성에 부러워했던 기억. 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다.

결혼을 서둘렀던 친구는 퉁퉁한 부잣집 마나님이 되어 너희들 아직도 철없이 그러고 싸 다니냐?’ 하는 표정이었다. 파리로 가서 지금은 암스테르담에 사는 친구는 외국인과 결혼해 유럽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는지 각박하게 변했다. 나 역시 힘든 뉴욕생활에 찌들다 조금 헤어난 상태라 제일 많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대화는 어색하게 이어지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던 풋풋했던 마음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멀리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 있어서일까? 서로를 그리워한 것은 단지 어릴 적 애틋한 기억뿐이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헤어짐을 아쉬워하지도 않고 우리는 서둘러 헤어졌다.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소중했던 젊은 시절은 이렇게 씁쓸하게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언제 다시 만날 날이 또 있으려나!

Friday, February 24, 2017

Out of sight, out of mind

In the middle of December of last year, in the evening when it was getting dark, I received an email. 'I found your email address on GoogleDo you remember me? Who left for Paris in 1978?'

How could I forget this friend? I used to go to Google frequently to get her contact information but I could not find it.

When I entered college, I could not make friends. I wandered around with this friend who was alone like me and another friend joined us. We went through all our school days.

At the end of the year before graduation, we were worried about the future and would talk about future desires. One friend wants to go to Paris to study, another friend to marry and I want to be a teacher. In fact, the dreams of the three of us were achieved.

It has been done exactly the same as far as I can believe in hope that if I try with a dream, it will come trueHow happy I am to receive e-mail!

It has been done exactly the same as far as I can believe in hope that if I try with a dream, It will come true. How happy I am to receive e-mail!

I remember three of us walking down the street at night after drinking alcohol too much, We were laughing and laughing loudly because we knew that one of our friend's shoes heels was missing. Whenever another friend, who has met of prospective marriage partners, I envied her whose mother bought a new clothes for herI used to miss the time looking at the photographs taken on the school campus.

My friend who was in a hurry to marry was a rich and wealthy. "Are you guys still going immature?" It was her expression. After went to Paris and now friend who lives in Amsterdam married a foreigner and it was not easy to adapt to life in Europe. I am also tired of the hard life in New York, so I might have changed the most from my friends.

Our conversation was awkward, and there was no fresh heart left to take care of each other. Was it too far in the direction of going to each person? It was only childhood memories that missed each other. We did not hesitate to break up the parting that we could not see again

Saturday, February 11, 2017

겹사돈 환상

친구 부부와 우리 내외만 단출하게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한때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친구의 롱아일랜드 집 뒤뜰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직장 잡아 떠났다.

우리는 아들 둘, 이 집은 딸 둘. 갓난이 때부터 친하게 놀며 자랐다. 오랜 세월 함께 한 사이다.

엄마 아빠의 예쁜 점을 닮은 이 집 딸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크면 우리 아이들의 파트너로 어떨까? 하는 마음이 움텄다.

친구 부부는 젊은 시절 음악 활동을 하다 만나 결혼한 사이다. 우리 남편은 평소 좀 팍팍한 집안 분위기에 음악 공부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구나 이 집 두 딸은 첼로 연주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 우아한 연주복을 입고 첼로를 끌어 앉고 찍은 사진에 눈길이 멈춘 남편의 모습이 기억난다서로가 정확히 어찌하자는 이야기는 없다.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겹사돈 어쩌고 하니 친구도 선뜻 대답은 하지 안 했지만, 굳이 반대하지도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멀리서 찾지 말고 엄마는 진이가 예쁜데 사귀어보지 않을래?” 
넌지시 친구 딸들 이야기를 아들에게 했다. 
엄마는, 진이는 아기 때부터 봐서 친형제 같아 필(feel)이 없어요.”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친구 딸들도 
말도 안 돼, 어떻게 친형제 같은데 사귀어?” 
한다는 것이 아닌가!

예상치 못했던 아이들의 반응에. ‘아이고 우리 며느릿감!’ 하면서 아이들 어릴 때부터 반기던 남편의 외침이 점점 잦아들었다아이들이 커가면서 바빠지자 함께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다. 부모인 우리가 맨해튼에서 만나자고 했다. 토요일 7시, 8명 예약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알아서 예약하고 우리는 가자는 데로 따라다녔다.

두 가족이 모인 테이블에서 막걸리와 소주 칵테일, 입맛에 맞는 다양한 안주가 놓였다. 식사하며 정신없이 떠들고 있는 다 큰 아이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니 지나간 시간의 감회가 새롭다우리 넷이었던 세상에 없던 것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다 컸다고 전화기 두들겨 가며 부모를 안내하며 데리고 다니니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겹사돈을 맺지 않아도 이대로도 좋으니 각자 좋은 사람 만나 행복했으면 한다.

Friday, February 10, 2017

A fantasy of double in-law

Our couple and a friend couple sit down and lean on our glasses. The backyard of friend’s Long Island's house, once surrounded by dense forests, was crowded with the laughter of the children, but the children left for work after graduated collage.

We have two sons, and friend has two daughters. They have been growing up playing friendly since they were baby.

The daughters of friends who resemble the beauty of their mom and dad were beginning to come into sight. I had also been tempted to become our children’s partner when they were grown up.  

The friend couple met in an orchestra when they were young and married. My husband wishes that a woman who has studied music became a daughter-in-law. The two daughters of friend have considerable talent for playing cello.

There is no telling what exactly we should do, but when I mention that ‘how about if we become double in-laws?’ neither they did readily respond nor they did necessarily oppose it.

“Do not look far away, why don’t go out with Jin?” “I feel that she is like a real sister because I have seen her since she was a baby. Not only my son, but also my friend daughter is saying, “no way,” how can I go out with him like a brother?

Unexpected children's reactions, our expectations gradually subsided. 

As the children got busy, as they grew older, they hardly had a chance to get together. We are parents wanted them to meet in Manhattan together. It was not easy to book at 7 o'clock on Saturday for 8 people, but the children made reservations and we went as we followed them.

At the table where the two families gather, I look at the kids who are having a big meal with variety of side dishes and chatting joyfully, I can feel a fresh sense of emotion in the past time.

It’s so convenience and nice to walk around with them who were born, grew up, and guides us.

We are parents don’t have to be double in-laws. I hope each of them will meet a good person and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