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2월 중순 어둑어둑해져 가는 저녁, 이메일이 들어왔다.
"네 이메일 주소를 구글에서 찾았다. 나를 기억하니? 1978년에 파리로 떠난 이 아무개라고?"
내가 어찌 이 친구를 잊을 수 있을까! 이 친구의 연락처를 찾아 수시로 구글에 이름을 쳐대곤 했지만,
찾지 못하고 꿈속에서나 만나며 그리워하던 친구다.
대학 입학을 하고 같은 과 친구들이 맘에 맞는 짝을
찾아 즐길 때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는 나처럼 혼자 다니던 이 친구와 어울렸고 또 다른 친구가 합세해 학창시절 내내 붙어 다녔다. 사귀는 남자가 모두 없던 졸업을 앞둔 연말,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앞으로의 소망을 넋두리하곤 했다.
이 친구는 파리로 가서 공부하기를 원했고 다른 한 친구는 결혼하기를 그리고 나는 선생이 되기를 바라는. 실지로 우리 셋의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꿈을 갖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지금까지도
믿을 만큼 그대로 아주 똑같이 이루어졌다. 이메일을 받는 순간 너무 반가웠다.
셋이서 술을 마시고 헤어져 집에 오는 길에 너무 많이
마신 이 친구의 하이힐 뒷굽이 빠져 없어진 줄도 모르고 찔뚝거리며 큰소리로 웃으며 밤길을 걷던 기억. 또 다른 한 친구는 졸업 전부터 결혼한다고 선보러 갈 때마다 엄마가 새
옷을 해 입히는 정성에 부러워했던 기억. 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다.
결혼을 서둘렀던 친구는 퉁퉁한 부잣집 마나님이 되어
‘너희들 아직도 철없이 그러고 싸 다니냐?’ 하는 표정이었다. 파리로 가서 지금은 암스테르담에 사는 친구는 외국인과 결혼해 유럽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는지 각박하게 변했다. 나 역시 힘든 뉴욕생활에 찌들다 조금 헤어난 상태라 제일 많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대화는 어색하게 이어지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던
풋풋했던 마음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멀리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 있어서일까? 서로를 그리워한 것은 단지 어릴 적 애틋한 기억뿐이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헤어짐을 아쉬워하지도 않고 우리는 서둘러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