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손에 장을 지지고 계실까?”
“아무려면,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살겠지.”
남편과 저녁상에서 주고받은 대화 때문일까?
언니가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누구야?”
“교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참, 그분도 너처럼 그림 공부를 했다던데.”
“이름이 뭐야?”
“김 아무개라고. 아니?”
인상착의를 자세히 듣고 보니 내가 아는, 그것도 만나서 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이다.
“언니,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 나좀 바꿔줘요. 할 말이
있어요.”
언니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줬다.
“저 기억하세요. 아무개
와이프 이수임인데 손에 장을 지지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손에 장을?”
“저희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잘 살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했잖아요.”
갑작스러운 전화,
게다가 황당한 질문에 놀라 어이없어하는 그녀에게 곰곰이 잘 생각해 보라고는 잽싸게 전화를 끊었다.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쉽게도 간밤의 꿈이었다.
현실에서의 그녀는 30여 년전 이맘 때, 새벽
7시에 전화해서 지금의 남편과의 결혼 불가론을 갖가지 이유를 대가며 두 시간이나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주변의 결혼 하지
않은 노처녀 중의 한 명이었다. ‘만약 결혼해서 이혼하지 않고 잘 살면 손에 장을 지진다.’며 수화기를 놓기 전에 마침표라도 찍듯이 내뱉었던 사람이다.
가뜩이나 직업도 없고 돈 안 되는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야말로 앞날이 깜깜한 남자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와중에 아침 댓바람에 귀가 먹먹하도록 들어야 했던.
“아니, 이 여자 뭐야? 왜 우리 결혼을 극구 말리는 거야?” 예비신랑에게 물었더니 어느 모임에서 그녀와 말다툼이 있었다며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말투였다. 그런 대우를 받고서도 결혼을 했으니! 나도 참 배알이 없는 인간이다.
그녀의 장담이 맞아떨어질 정도로 우리의 결혼생활은
허름한 창고 건물에서 시작했다. 추위와 가난에 떨며 망망대해에
버려진 듯 온갖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을 뒤엎고 밥 잘 먹고 평탄하게 살고 있다.
사람의 내일 일을 누가 알랴. 장을 지져라. 마라.
하기에는 우리들의 삶의 여정은 여전히 짙은 안갯속이다. 그 속에서 어두운 동굴로
아니면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아늑한 길로 들어설지는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