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1, 2012

그리운 사람

검은 가죽옷에 래그워머을 신은 키에 꾸부정히 걸어가는 사람을 봤다. ‘아 선배님이 지나가네. 차 세워요.’ 하려다 아차 싶었다.

우리는 그 선배님을 정 박사라고 불렀다. 박사학위는 없지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아는 것이 많아서다. 본인 말로는 주간지를 열심히 읽은 덕분이라며 정 박사라고 불러 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 놀러 와.” 
어제 놀았는데 또 놀아요?” 
주중에 노는 거 하고 주말에 노는 게 같냐?” 
매일 노는 사람도 주말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3년간 살다 헤어진 부인과 이혼하러 갔던 이야기를 수십 번도 더 들었
이혼하려고 기다리는데, 앞에 서서 기다리던 부부가 싸우는 거야. , 이혼하러 와서까지도 싸우는 사람이 있더라.” 
남의 이혼 이야기엔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졌다.
이혼선서를 하고 나와 마지막으로 정말 다정히 헤어지려고 했는데 이게 싹 돌아서더니 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가버리리는 거야. 아직도 달려가는 택시 뒷모습이 눈에 선해.” 
자신의 이혼 이야기엔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는 시청에서 우리 결혼식 증인 중의 한 명이었다. 온종일 짧은 주례 겸 선서식을 앵무새처럼 주관하는 퇴역 대령은 우리 일행이 영어를 못하는 줄 알고 그나마 대충하던 것을 더욱 짧게 끝냈다. 그 바람에 사진 찍을 틈이 없었다고 다시 하라며 그가 떼를 쓰기도 했었는데.

야 이혼 한 사람이 주례를 서면 이혼한다는데 괜찮겠지?” 
걱정 섞인 신 나는 표정으로 내 동생 결혼식 주례를 섰다. 결국, 내 동생은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갈 곳이 없던 우리는, 주말이나 연휴 그리고 명절엔 정 선배를 찾아가곤 했다. 
인제 그만하고 일어납시다.” 
선배님 건강을 생각해서 술 마시다 한마디 하면 버럭 화를 내며 
놀 줄도 모르는 놈, 내가 너희보다 더 오래 살 거야. 가. 짜식아.”
오래 산다더니그는 췌장암으로 요절했다. 오늘 같은 명절엔 피 붓 치인 양 항상 함께했던 그에게서 
야 김치 있니?” 
하는 전화가 걸려 올 것 같다
하늘나라에서도 정 선배와 이 선배( 정 선배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가신 다른 선배 )가 만나서 술 마시고 있겠지?” 
뻔하지. 두 분이 살아계시면 함께 한잔할 텐데.” 
술맛이 예전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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