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선배님을 정 박사라고 불렀다. 박사학위는 없지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아는 것이 많아서다.
본인 말로는 주간지를 열심히 읽은 덕분이라며 ‘정 박사’라고 불러 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야, 놀러 와.”
“어제 놀았는데
또 놀아요?”
“주중에 노는 거 하고 주말에 노는 게 같냐?”
매일 노는 사람도 주말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3년간
살다 헤어진 부인과 이혼하러 갔던 이야기를 수십 번도 더 들었다.
“이혼하려고 기다리는데,
앞에 서서 기다리던 부부가 싸우는 거야. 야, 이혼하러 와서까지도 싸우는 사람이 있더라.”
남의 이혼 이야기엔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졌다.
“이혼선서를 하고
나와 마지막으로 정말 다정히 헤어지려고 했는데
이게 싹 돌아서더니 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가버리리는 거야. 아직도 달려가는 택시 뒷모습이 눈에
선해.”
자신의 이혼 이야기엔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는 시청에서 우리 결혼식 증인 중의 한 명이었다. 온종일 짧은 주례
겸 선서식을 앵무새처럼 주관하는 퇴역 대령은 우리 일행이 영어를 못하는 줄 알고 그나마 대충하던 것을 더욱 짧게 끝냈다. 그 바람에 사진 찍을 틈이 없었다고 다시 하라며 그가 떼를 쓰기도 했었는데.
“야 이혼
한 사람이 주례를 서면 이혼한다는데 괜찮겠지?”
걱정 섞인 신
나는 표정으로 내 여동생 결혼식 주례를 섰다. 결국, 내 동생은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갈 곳이 없던 우리는, 주말이나
연휴 그리고 명절엔 정 선배를 찾아가곤
했다.
“인제 그만하고 일어납시다.”
선배님 건강을 생각해서 술 마시다 한마디 하면 버럭 화를 내며
“놀 줄도 모르는 놈, 내가 너희보다 더 오래 살 거야. 가. 짜식아.”
오래 산다더니… 그는 췌장암으로 요절했다.
오늘 같은 명절엔 피 붓 치인 양
항상 함께했던 그에게서
“야 김치 있니?”
하는 전화가 걸려 올 것 같다.
“하늘나라에서도
정 선배와 이 선배( 정 선배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가신
다른 선배 )가 만나서 술 마시고 있겠지?”
“뻔하지. 두 분이 살아계시면 함께 한잔할 텐데.”
술맛이 예전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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