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제사를 모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주면 얼마나 좋겠니!”
아프시다던 시어머니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무척 기뻐하셨다.
7년 전, 젊은 나이에 형님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시고 아주버니는 몇 달 전에 재혼했다. 새 식구가 된 형님을 시집살이시킬 수가 없었다. 시부모 옆에 사는 1.5세 막내 동서는 그동안 시할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형님 제사까지 지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7년 전, 젊은 나이에 형님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시고 아주버니는 몇 달 전에 재혼했다. 새 식구가 된 형님을 시집살이시킬 수가 없었다. 시부모 옆에 사는 1.5세 막내 동서는 그동안 시할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형님 제사까지 지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힘든데, 아버지 차례만 정월과 추석에만 평소에 즐겨 하던 것으로 간단히 지내라.”
“제가 살아 있는 동안만 지낼 거예요. 아이들에게는 대물림 않을래요.”
"그래, 고맙다.”
“훗날 어머니 차례도 지낼게요.”
“나는 괜찮다. 내가 죽은 후엔 하지 마라.”
인터넷으로 제사나 차례상을 어찌 차리는가를 알아봤다. 인터넷에 있는 데로 격식 갖추다가는 몇 번 지내고 포기할 것 같아 어머니 말씀대로 평소에 시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으로 하기로 했다. 시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익힌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6.25전쟁 때부터 미 군속으로 일했다. 미8군 안에 살면서 1주일에 한 번 집에 오셨다. 한창 전쟁 중이던 월남에서부터 뉴질랜드,
마이애미,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아 등등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일하셨다. 70년 초, 식구들을 LA에 이민 초청하고도 정년퇴직할 때까지 알래스카에서 일하셨다.
오랜 외국 생활 탓에 한식을 별로 즐기지 않아 젓갈이라든지 양념이 진한 음식은 전혀 입에 대지 않으셨다. 맥도날드 커피와 레드와인을 즐기셨고 본인이 손수 양식해서 드시지 않을 때는 슈퍼마켓의 만들어 놓은 간단한 냉동 음식을 드셨다. 그러나 한국 배는 무척 좋아하셨다.
차례 지내는 아침에 우리 부부는 조깅을 마치고 맥도날드에 들러 블랙커피를 사다 차례상에 우선 올렸다. 전날 준비한 레드와인과 배 그리고 냉동 음식도 빠뜨리지 않았다. 완전 서울, 뉴욕 퓨전 차례상이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간단한 차례를 지내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정성껏 빚은 만둣국을 올리는 나에게 입이 댓 발 나온 남편이
“나물은?, 전은?,
생선은 없어?”
본인이 먹고 싶었던 한국 토종 음식을 열거하며 준비하지 않았다며 성질을 부렸다. 어쩐지 제사를
모셔오겠다고 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더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간단하게 지내자며~”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그러면 음식도 제대로 차리고 인터넷에 있는 데로 격식을 차려 지내던지. 지방도 쓰지 않고 음식만 잘 차리라니. 절만 서너 번하고 먹기만 하려고.”
“쉿, 조용히 해. 차례상 앞에서 싸우면 어떻게 해. 아버지 혼백이 오다가 잡숫지도 않고 가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