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누군가가 한번 보라고 던져준 송혜교와 이병헌이 나온 비디오 ‘올인’을 여러 해 전에 봤다. 그 이후론 어떤 드라마도 볼 수 없을 만큼 말 그대로 오직 ‘올인’에만 올인했다. 왜 그런지는 우리도 알래야 알 수가 없다. 단 우리 부부가 아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 미국에서 처음 본 한국 드라마라는 이유밖에는 없다. 한마디로 첫사랑 같은 것이랄까.
그 이후 사람들이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아무리 권해도 볼 수가 없다. 어느 드라마도 ‘올인’만큼 우리 부부를 빠져들게 할 수 없어서다. 더군다나 드라마 주제가 ‘처음 그날처럼’ ‘괜찮아요. 난’에도 빠져 자주 듣곤 한다.
고백하자면,
결혼 이후 어느 남자에게도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 뭐 나라고 멋있는 남자를 볼 줄 모를까. 눈이 나빠 안경은 끼었어도 분위기 있는 남자를 멀리서도 금방 알아본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멋진 것은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이상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오히려 멋진 남자를 보면 눈을 돌리고 피해 간다.
확인한 바는 없지만, 남편도 아직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단정하며 살고 있다. 물론 우리 둘 다 누가 거들떠볼 만한 외모를 갖추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그냥 마음속의 애인을 하나씩 허락하기로 했다. 남편은 “머리통 큰 이병헌이 뭐가 좋냐. 바람둥이가 뭐가 좋아.”하며 놀리지만 그래도 좋다.
난 송혜교도 좋다. 요즈음 키가 큰 최지우를 좋아하기 시작한 남편 때문이다. 예전에 남편이 첩을 두고 또 다른 첩을 찾아 나서면 본첩과 본처가 서로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냈다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올인’에서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그 햐얀 집을 제주도에 갔을 때 보러 갔지만, 집은 바람에 날아가 온데간데도 없고 송혜교가 있었던 성당만 둘러봤다. 이병헌이 바람에 날아가 없어진 듯 섭섭한 마음에 멍게와 해삼을 잘근잘근 씹으며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술기운에 내려다보이는 절벽 밑의 출렁이는 파도는 나를 삼킬 듯 가까이 와 있었다.
내가 그 하얀 집을 찾아 기웃거릴 때 일본 아줌마들도 집이 있었다는 터 자리를 두리번거리며 허전해 하던 표정이야말로. 내가 돌았지. 어쩌다 그리도 흉을 봤던 ‘욘사마, 본사마’하며 열광하는 일본 아주머니들과 함께 어울려 헤매다니.
좀 더 자극적이고 짜릿짜릿한 사랑을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분명히 큰 소리로 주례 섰던 목사님이 ‘검은 머리 백발이 될 때까지 변치 않고 사랑하며 살겠느냐’고 물었을 때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는가. 실은 더는 결혼할 남자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는 안도감에서 그리 크게 ‘네.’ 하지 않았을까.
결혼식 날 신혼부부들은 신혼여행 떠나느라 경황이 없다. 그래서 주례가 물었던 서약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혼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신혼여행도 못 간 나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변치 않고’를 마음속에 새겼다. 남편의 기억력이 희미해져 마음이 변한다면 그때 가서 나도 다시 생각은 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드라마 ‘올인’의 주제가 ‘처음 그날처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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