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5, 2025

한인은 한인을 꺼린다


둘이 들어가면 안성맞춤인 작은 야외 풀장에서 동양계 부부가 선글라스를 쓰고 와인잔을 맞부딪치며 한마디 외친다. 확실하게 들리지 않아서 긴가민가했다. 그 부부를 자세히 훑어봤다. 한인 같기는 한데 말 걸기 쉽지 않은 터프한 인상이다. 

크루즈에서 보름이 지나도 한인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아시안은 차이니스다. 배 탄 지 20일이 지난 후 와인잔을 부딪치던 부부가 중국인처럼 생긴 다른 부부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한국말이다. 

“저 사람들 한국 사람이야. 인사할까?”

“말 걸지 마. 조용히 있다가 배에서 내리자고.”

남편 말에 나는 한인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떨쳐버리고 그들에게 눈인사만 했다. 


한 달 후 배에서 내려 비행장에서 그들과 맞닥뜨렸다. 눈인사했다. 비행기를 탔다. 와! 바로 옆자리에 그 부부가 앉았다. 참다못한 나는 아는 척하려는데 남편이 내 옆구리를 쳤다. 그러든지 말든지 더는 죄짓고는 못 살겠다는 심정으로 이실직고했다. 

“안녕하세요. 배 내리기 전에 어떤 한국분과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어요.”

“아 그러세요.”

남자분이 벌떡 일어나 내 남편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내 남편도 마지못해 악수했다. “어디로 가세요?”

남자가 물었다. 

남편이 “뉴욕”이라고 대답하자 

“우리는 플로리다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약속이라도 하듯 네 명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조용했다. 긴 비행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짐을 내리며 작별 인사했다. 


뭔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찜찜한 갑갑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한인이 별로 없던 예전 같으면 반가워서 이미 친구가 됐을 텐데. 한인이 많아지자 누구나가 슬그머니 피하는 데야. 나도 그들의 편안함을 위해 남편 말대로 입 꾹 다물고 있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나의 이실직고가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다. 

Koreans Avoid Koreans

At a small outdoor pool, just big enough for two people, an Asian couple clinked their wine glasses while wearing sunglasses. I wasn’t sure what they shouted, but I tried to listen. I looked at them carefully. They seemed Korean, but their tough appearance made it hard to approach them.

For two weeks on the cruise, I didn’t meet any Koreans. Most Asians were Chinese. On the 20th day, I finally heard the couple—who had clinked their glasses—speaking to another couple who looked Chinese. This time, I clearly heard Korean.

“They’re Korean. Should we say hello?” I whispered.
“Don’t. Let’s just stay quiet until we get off the ship,” my husband replied.

So instead of talking to them, I just gave them a small eye greeting.

A month later, after getting off the ship, we ran into the same couple at the airport. Again, I gave them an eye greeting. On the plane, to my surprise, they were seated right next to us. I couldn’t hold back anymore. I wanted to say something, but my husband nudged me in the side to stop.

Still, I felt guilty staying silent. So I finally confessed.
“Hello. Before getting off the ship, I heard you speaking in Korean.”
“Oh, really?” the man answered.

He quickly stood up and reached out to shake my husband’s hand. My husband accepted the handshake unwillingly.
“Where are you going?” the man asked.
“To New York,” my husband replied.
“We’re going to Florida,” the man said.

After that, the four of us became completely silent, as if we had agreed not to talk anymore. No one wanted to start another conversation. Luckily, it was not a long flight.

“Goodbye,” I said politely while taking down my bag.

Still, I felt a sticky, uncomfortable feeling, like something clinging to me. What could I do? In the old days, when Koreans were rare, we would have already become friends. But now that there are many Koreans, people quietly avoid each other. Maybe I should have stayed silent, like my husband said, for their comfort. My confession probably made them uncomfortable.

Friday, August 8, 2025

피아노가 있는 풍경


“한국인이세요?”

“아니요. 일본인이에요"


처음 뉴욕에 와서 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나는 늘 외롭고 쓸쓸함에 수업이 없을 때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 앉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시안이 많지 않았다. 아시안만 보면 눈인사하고 인상이 좋다 싶으면 말 걸어 친구가 되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녀가 나를 그녀의 그리니치빌리지 아파트로 초대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 배경인 Grove court 근처 아담한 아파트였다. 나는 집안에 들어서며 와! 이런 위치에 분위기 좋은 집에서 산다니 부러웠다. 창가에서 조금 떨어져 거실을 향해 있는 검은 책상과 의자. 코너에는 초록색 안락의자가 자신감 가득 찬 자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그 옆으로 피아노가 묵직하게 버티고 있었다. 유학 생활하면서 피아노까지 있다니! 그녀의 넉넉한 부유함에 움찔했다.


“와! 멋지다. 너 혼자 사는 거야? 좋겠다.”

그녀는 조용히 차를 내왔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고향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갑자기 불안한 표정으로 화제를 바꿨다. 

“아빠가 일본에서 다음 달에 온다는 데 큰일 났어.”

“왜? 아빠와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서 구경 시켜드리면 되잖아.”
“실은, 이 아파트 아빠 친구가 해준 거야. 내가 뉴욕에 공부하러 간다며 친구에게 나를 잘 보살펴 달라고 아빠가 부탁했는데 그만 그와 살게 됐어.”

“아빠 친구 싱글이야?” 

“아니. 부인과 아이들은 업스테이트 뉴욕에 살아. 부인이 우리 관계 몰라. 불안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도 전혀 몰라. 알면 큰일이야. 나 어떡하지? 너 무슨 좋은 아이디어 없어?”


나는 할 말을 잃고 검은색 피아노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오 헨리 작품의 특징인, 예상치 못한 반전 같은 일본 친구 삶에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내가 불륜 문제 해결책을 알 수 있을까? 한동안 우리는 차만 조용히 홀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뻘떡 일어나 문을 열고 도망치다시피 그녀의 아파트를 나왔다. 나를 믿고 속마음을 터놓았는데 그녀에게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순간 후회했다. 괴로웠다. 친구에게 따뜻한 한마디 못 해주고 나온 것이 미안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아파트 주변을 맴돌며 다시 그녀에게 갈까? 말까? 고민하다 집에 왔다. 그 이후 그녀를 피해 다녔다. 


불륜이 만연한 요즈음, 그녀의 근심 어린 희고 둥근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쯤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Landscape with a piano

“Are you Korean?” 
“No, I’m Japanese,” she said.

This happened when I first came to New York and started school. I always felt lonely and sad, so when I didn’t have class, I often sat in Washington Square Park. At that time, there weren’t many Asians around. Whenever I saw another Asian, I made eye contact. If they looked kind, I would talk to them and try to become friends.

She was also studying music at the same school as me. We became friends quickly.
She invited me to her apartment in Greenwich Village. It was a cozy place near Grove Court, where O. Henry’s short story The Last Leaf takes place. When I walked into her apartment, I was amazed.
“Wow! You live in such a beautiful place in this nice area!” I said.

There was a black desk and chair facing the living room, not far from the window.

In one corner, a green armchair stood proudly. Next to it was a piano—heavy and strong. I was surprised. Having a piano in New York as a student? She must have had money.
“Wow! This is so nice. Do you live here alone?”
“Yes,” she said quietly and brought out some tea.
We drank tea and talked about our homes.
Suddenly, she changed the topic with a worried face.
“My dad is coming from Japan next month. I’m in trouble.”
“Why? You can show him around and enjoy time together.”
“Well... this apartment is from my dad’s friend. Before I came to New York, my dad asked his friend to take care of me.
But now… I’m living with him.”
“Wait… Is your dad’s friend single?” 
“No. His wife and kids live in upstate New York.
His wife doesn’t know about us. I’m scared. My dad doesn’t know either. If he finds out, it will be terrible. What should I do? Do you have any good ideas?”
I didn’t know what to say. I sat there in silence, like the dark black piano.
Her story shocked me, like the surprise endings in O. Henry’s stories. I was too young to know what to do about such a serious problem. We just sipped our tea quietly. Then, suddenly, I stood up, opened the door, and ran out of her apartment. Later, I felt bad. She trusted me and told me her secret, but I just left. I felt guilty that I couldn’t say even one kind word to her. I walked around her apartment for a while, wondering, “Should I go back? Or not?” But in the end, I just went home. After that, I avoided her.

These days, when affairs are so common, I keep thinking about her pale, round face full of worry. How is she doing now?

Thursday, July 24, 2025

우는 아이가 떡을 받는다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 가서 판화 작업하던 날, 작업실 문틈으로 작은 아이가 보였다. 

“아들~ 엄마 왔어. 얼굴 좀 보자.”

“엄마 나이키(프렌치 불도그 이름) 산책시켜야 해요.”

“알았다. 그럼 이따가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급하게 들어왔다.

“엄마 나이키 좀 데리고 있어요. 길에 버려진 TV를 가지러 가야 해요.”

아이는 몸통이 가늘고, 스크린이 커다란 TV를 끙끙거리며 들고 왔다. 

“엄마 나이키가 갑자기 멈추고 ‘너 이거 가져갈래?’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봤더니 너무 멀쩡한 TV가 있는 거예요. 나이키는 쓸만한 물건이나 돈이 떨어져 있으면 나를 쳐다보고 ‘어때 이 물건 쓸 만하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봐요. 너무 똑똑하고 사랑스러워요.”


TV를 틀었다. 소리도 화면도 좋다. 단지 화면 밑부분이 윗부분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아이는 너무 멀쩡한 것을 도로 내다 버리기가 아까운지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수리공을 부르겠단다.

“수리 비용으로 차라리 TV를 사겠다.”

“돈 안 들이고 고칠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이는 TV 만든 회사에 전화했다. 

“언제 어느 매점에서 구입했냐고 묻길래 맨해튼 14가 근처 폐점한 전자제품 매장 이름을 췄더니 수리공이 와서 공짜로 말짱하게 고쳐줬어요.”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니?”

“엄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일단 말해보고 안되면 포기해야지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을 내가 미리 안될 거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돼요. ”

“그래 옛말에 우는 아이가 떡을 받는다. 는 것과 같구나.”

공짜라 선가! 소리도 잘 들리고, 화면도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랑스러운 강아지 나이키도 우리 식구를 닮아 공짜를 좋아하는 눈치다. 

Monday, July 21, 2025

A Crying Child Gets the Rice Cake

One day in Greenpoint, Brooklyn, I was working on a print project. Through the crack in the studio door, I saw my younger son.

“Son, Mommy’s here. Let me see your face.”

“Mom, I have to take Nike for a walk.” (Nike is the name of his French Bulldog.)

“Okay, then I’ll see you later.”


A short time later, the child came rushing back.

“Mom, can you watch Nike for a minute? I need to get a TV that someone left on the street.”

He came back carrying a big TV with a thin body and a large screen.

“Mom, Nike suddenly stopped walking and looked at me like, ‘Do you want this?’ So I looked, and there was a perfectly good TV. Whenever Nike sees something useful or money on the street, he stops and looks at me like, ‘Isn’t this a good one?’ He’s so smart and lovable.”


We turned the TV on. The sound and screen were good. Only the bottom of the screen wasn’t as clear as the top. My son kept looking at it. He didn’t want to throw away something that still worked. He said he would call a repairman.

“I’d rather buy a new one than pay for repair.”

“I have an idea to fix it for free!”


He called the TV company.

“They asked me when and where I bought it.

I gave them the name of an old electronics store near 14th Street in Manhattan—even though it’s closed now. Soon, a repairman came and fixed it perfectly for free!”

“How did you think of that?” I asked.

“If you want something, you should speak up. If it doesn’t work, then you can give up. But don’t assume they’ll say no. I just have to do my part.”

“Yes, it’s like the old saying: ‘A crying child gets the rice cake.' (Korean Proverb: If you ask, you might receive)

Maybe it worked because it was free! The sound was great, and the screen looked even clearer. Even Nike, our sweet dog, seems to like free things—just like our family.

Friday, July 11, 2025

경상도 사나이


고추 조림, 김치와 배추된장국을 떠 놓고 남편 맞은편에 앉았다. 밥상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남편 눈치를 살폈다. 국에 밥을 말아 먹던 그가 한마디 한다.

“배추된장국이 진국이야. 최고의 건강식이지.”  

시래깃국을 먹고 자란 남편은 매일 된장국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의 ‘진국’이라는 말에 옛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살만한 옷이 있나 보려고 종로 지하상가 옷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머, 너 수임이 아니야.”

“어머머, 미정아 웬일이니?

“나 여기서 일해.”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손을 맞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 진국이 생각나니?”

“그 아이 잘생기고 남자다워 무척 인기 있었잖아. ” 

“너 학교 졸업하고 그 애 만난 적 있니? 진국이를 내가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혹시나 너는 그 애 근황을 알고 있나 해서. 나야 이미 결혼해서 끝난 일이지만.”

“어머머 언제? 누구하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남쪽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만난 경상도 남자하고.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자. 예전에 너희 집에 가서 밥통에 있는 밥 다 먹고 삼립 빵을 또 먹어도 네 엄마가 한창 클 때라며 더 먹으라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미정이는 내 초등학교 착한 단짝이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 따라갔다. 어찌어찌해서 그녀가 사는 곳에 갔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산다는 집 구조를 한국 드라마에서 서너 번 본 적 있다. 옥탑방으로 문을 열자마자 부엌이 있고 방 한 칸이 훤하게 보이는 구조였다. 우리가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의 남편이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함께 왔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상냥하게 인사했다. 그는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운 아저씨 인상이다.

“수임아, 방에 들어가 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니 들어가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친구 남편이 몹시 화가 난듯해 무서웠다. 

“나 그냥 여기 있을게.”

친구도 남편 눈치가 보이는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문가에 서 있었다. 친구가 저녁상을 차려 들고 남편 앞에 가져다 놓으려는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나 밥상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배고파 죽겠는데 어디를 쏘다니다 온 거야.”

에구머니나! 난 너무 놀라서 냅다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났다. 경상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나이 하면 밥상을 걷어차는 남자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