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빠져나가는 내 머릿속에 책에서 읽은 지식이 남아있을 리 없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기억나지 않는 지식을 표현할 수 없어 불편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느끼지 않지만.
다행히도 요즈음은 색바랜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구글링하면 볼 수 있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는데 뭔가는 얻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작가의 지혜를 내 생활에 오버랩 시켜 응용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꽤 삶이 재미있고 즐겁다.
책에 빠져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일생을 후회할 것 같아서 한동안 책과의 거리가 멀어졌었다. 아이들이 크고 난 후 책을 읽으려 했지만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동네 도서실 북클럽을 기웃거리며 방황했다. 영어로 주절대는 노인들의 독후감을 듣는 것도 짜증이 날 즈음 한국말로 하는 북클럽에 들어갔다. 한국말은 버벅대던 영어로 마지못해 참석하며 축 늘어졌던 나를 짜릿짜릿 쑤셨댔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로 시작하는 카뮈 소설 ‘이방인’ 첫 문장이 나를 쳤다. 평생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던 엄마가 곧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사형수가 죽을 날을 받아 놓고 기다리듯 늘 가슴 한편에 웅크리고 나를 짓눌렸었다. 유학 시절 엄마의 죽음을 안 것은 돌아가신 지 두 달 후였다. 아픔을 기억하고 표현하기 두려워 파묻어 버리고 모른 채 방황했던 나는 이방인 책에서 굳이 엄마의 죽음을 변명하려 하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에게 빠졌다.
카뮈의 단편 ‘손님’에서도 황량한 광야에서 점보다 작은 살인자와 그 살인자를 죽음 아니면 삶으로 인도해야 하는 주인공의 갈등은 하루도 안 되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스스로 옳은 길을 찾으려는 고통의 시간이 왜 그리 몇 갑년이 지난 듯 길게 느껴졌는지?
북클럽 회원들과 머리 맞대고 책이나 적당히 읽어야지 했다. 하지만, 늪에 빠지듯 책에 빠져든다. 나 혼자라면 그 많은 책 중에 어떤 것을 읽어야 할지 몰라 헤맬 텐데, 북클럽을 이끄는 회장님은 강사를 초대해 읽을 책을 정리 정돈해서 밥상을 차려주는 식이다. 나는 수저를 들고 잘 먹고 건강하게 내일에 몰두하면 된다.
인생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으로 결정된다. 북클럽의 회장님, 서로 주고받고 밀고 당기며 성장하는 회원님들 그리고 강사님들과의 만남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북클럽에서 선물을 풀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삶에 응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다음 달 북클럽을 기다리며 마음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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