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자라라는 키는 크지 않고 늙어서까지 머리카락과
손발톱은 왜 이리도 빨리 자라는지.
미장원 가기가 귀찮고 힘들다. 자주 찾으면서 서로가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다 보면 불쑥 미용사가 떠났다.
새로운 곳을 찾아 낯선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쌓는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곤하다.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인간관계다. 머리야 잘 못 자르면 또 자라니까 그렇다 쳐도 내 몸의
일부를 만지는 낯선 사람과 가까이 붙어서 오가는 말과 분위기가 매끄럽지 못하면 그야말로 머리끝이 솟는다.
어릴 적부터 누가 쳐다보는 것도, 가까이 오는 것도, 내 몸 쓰다듬는
어른들의 손길도 싫었다. 엄마가 항상 내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가위
소리만 듣고 많이 자른다고 난리, 자른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울고불고 난리 쳤다.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벌인지 결혼 후 나는 집안
이발사가 됐다. 다행히 남편은 곱술 머리라 잘못 잘라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 머리도 잘라줬지만, 성인이 된 후엔 이발소에 가라고 했다. 아무래도 젊은 아이들은 기술 좋은 미용사에게 맡겨야 인물이 더 훤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서 자르던 습관에 길들여서인지 친구가 잘라 준단다.
이발기 세트를 여러 번 바꿨다. 숙련된 이발사처럼 자른다. 처음에는
이발기로 대충 밀고 가위로 쓱 쓱싹 쓱 노련한 솜씨로 자른다. 그래봤자 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미장원엘 가지 않는다. 내가 남편 머리를 깎아주고 나면 샤워하고 난 후 남편은 내 머리를 엄마처럼 단발로
자른다. 친구 남편은 와이프 염색도 해 준다는데 머리 자르는 일은 수월하다. 엄마에게 하던 못된 성질을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아서 잘 못 잘라도 고맙다고 좋아한다.
머리 자르고 샤워하고 나면 노곤해져 눕는다. 천정을 보고 누워 엄마에게 못되게 굴던 생각 하다가 갑자기 수제비가 먹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머리를 자르고 나면 수제비가 먹고 싶다. 미장원에 갈 돈이 없는 부부가
서로 머리 잘라주고 외식할 돈이 없어 가난한 시절에 먹었던 수제비와 궁합이 맞아서인듯하다. 콩나물밥도 그럴듯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