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한 번쯤은 저녁 밥상에서 수십 년간 습관처럼
마셨던 술을 끊고 자가 진단을 해본다. 처음 며칠은 술이 땡기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시큰둥해지면서 더는 마시고 싶지 않다. 그러니
분명히 중독은 아니다.
미니멀로 살며 알뜰살뜰 살림하는 내가 와인만은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사러 나간다. 값나가지 않는 와인을 사는 것은 아깝지도
않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즐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음악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연기를 내 뿜을 때 긴장을 풀고 눈을 지그시
감듯이, 한잔 들어가면 원래의 내 모습을 찾은 듯 심신이 느긋하게 가라앉는다.
이삿집센터 인부가 뒤 포켓에서 꺼낸 납작한 독주를 들이킨 후 힘에 부치는 물건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에서 순간적인 술기운의 위력이 전해진다. 부엌으로 들어가기
싫은 나도 인부처럼 술 마시면서 저녁상을 뚝딱 쉽게 차린다. 남편이 싫다가도 함께 잔을 기울이면 견딜만해
진다. 그래서 권태기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맨정신으로 어떻게
한 남자와 35년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술이 들어가면 세상이 흐리멍덩해지며
뭉게구름 위에 누운 듯 홀가분해진다. 그러니 중독이 아니랄 수도 없다.
“주말인데 그냥 한잔하지?”
저녁상에서 말이 줄어들고 재미없는 나에게 남편은 마시라고 부추긴다. 적어도 자가진단 확신이 들 때까지는 거부한다.
혼자 반주하는 남편의 술벗이 돼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마시지 뭐. 까짓것. 확실히 봤지? 중독 아닌 것.”
다시 마시기 시작한다.
매달 식비보다 술값이 더 든다던 은퇴한 지인이 저세상으로
갔다. 주위에서 남겨진 부인이 살아갈 경제적인 면을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만기 은퇴 연령 유족자인 부인은 남편의 100% 연금을 받는다. 게다가 일단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부인으로서는 그 많던 술값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무서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환경이 나의 습관으로 이루어졌을진대? 과연 내가 지은 습관의
집 기둥이 무너질 기미가 있나? 없나? 찬찬히 둘러봐야겠다. 일단 한잔하면서.
No comments:
Post a Comment